도깨비 -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전생의 이야기, 마침내 풀어야 할 시련과 숙제
항상 말한다. 희생은 위선이다. 희생은 기만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그렇다면 다만 하루라도 다만 한순간이라도 그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것이 당연한 사람의 마음 아니겠는가. 더구나 그 사람마저 자신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슬퍼할 것을 안다면.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스스로에 대해 혼자서 만족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나를 위해서도 살고 싶고 그 사람을 위해서도 살고 싶다. 그 사람을 위해서도 살아야 하고 나를 위해서도 살아야 한다. 어떻게 그 사람을 혼자 두고 나 혼자 떠날 수 있는가. 내가 없는 세상에 그 사람만 남겨놓을 수 있는가. 만일 자기가 살고 싶은 것으로 인해 그 사람이 위험을 겪게 된다면 함께 헤쳐가면 그만이다. 그래서 도저히 두 사람의 힘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다가 그때쯤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한 선택을 하면 된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그래도 안될 때 그때 희생이든 헌신이든 하면 되는 것이다. 지레 포기하고 도망치고서 그것을 숭고한 사랑으로 치장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게 된 입장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설사 자신으로 인해 죽게 되더라도 사랑한다. 만일 자신으로 인해 죽게 된다면 신의 뜻을 거슬러서라도 살리고 싶을 만큼 그 사람을 사랑한다. 그래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살아있어야 한다. 망설임이 사라진다. 지은탁(김고은 분)의 원망어린 눈물과 마주한 순간 모든 고민도 갈등도 사라진다. 그냥 살겠다. 살아서 함께하겠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서 이 소녀와 함께하겠다. 그리고 혹시 모를 이 저주와도 같은 운명으로부터 자신과 그 사람을 모두 구해낼 방법을 찾겠다. 단지 화장실을 찾기 위해서 저승사자의 방문을 열었던 이름도 없는 어느 사람처럼. 희망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는 그 순간까지 함께하는 것이기에 희망이다. 불가능할지라도. 무모할지라도. 만에 하나 아주 실낱같은 가능성만 있으면.
깜짝 놀랐다. 오라버니라니. 이미 써니(유인나 분)의 본명이 김선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뒤였다. 김선(김소현 분)은 도깨비 김신(공유 분)의 전생에서 그의 여동생이었다. 김신을 죽인 어린 왕의 아내였다. 아마 저승사자(이동욱 분)가 김신을 죽이고 써니마저 죽인 전생의 어린 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치 전생의 기억이 남아있기라도 한 듯 김신에게 오라버니라니. 그냥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를 부르는 입버릇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지루하게 김신과 지은탁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반전처럼 폭풍처럼 김신과 김선, 그리고 어린왕이 얽힌 전생의 이야기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역시나 만지면 전생을 볼 수 있는 저승사자의 능력이 갑작스럽게 전생의 이야기를 모두의 앞에 끌어다 놓는다. 김신과 저승사자 모두에게 생을 넘어선 한이며 반드시 넘어야 할 숙제다.
자기의 이름을 찾아간다. 자신의 존재를 찾아간다. 하나씩 써니에게 자기라는 존재를 만들어간다. 자기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 너무나 당연한 그런 것들이 저승사자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다. 한 마디 하기 위해서 며칠이나 연락을 끊는다.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 모습마저 감춘 채 몰래 지켜봐야만 한다. 그런데 자기의 이름을 되찾는다면. 저승사자가 되어 잃어버린 자신의 기억을 되찾게 된다면. 하필 조금씩 써니에게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던 중이었다. 신의 의지는 그렇게 짓궂고 모호하다. 악취미다. 원래 신의 선악과 인간의 선악은 다른 법이다. 신의 인정도 사랑도 결국 사람의 그것과 전혀 다른 법이다. 삼신할머니와 그리고 어쩌면 유덕화(육성재 분)가 그들의 곁을 맴돌며 길을 도와준다.
때때로 사소한 농담들이 즐거움을 더해준다. 깨알같이 공유의 이름이 나오고, 점쟁이가 저승사자의 정체를 밝히는 장면도 보인다. 현역 아이돌들을 비서(조우진 분)가 어설프게 흉내내는 장면도 그냥 웃게 만들었다. 원래 산다는 건 그렇게 시시한 것인지 모른다. 시시하게 웃고 시시하게 울고 시시하게 화내고 시시하게 원망하며 시시하게 화해한다. 별 것 아닌 일로도 괜히 삼각하고 괜히 진지하고 괜히 우울해서는 괜히 자학하고 괜히 소란을 피운다. 아이같다. 지은탁은 원래 미성년자였고 남자는 원래 나이를 먹어도 철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저승사자는 그냥 기억도 없이 갓태어난 아이마냥 순백하다.
아마 내일 본격적으로 900년 전 그날의 일에 대해 나오게 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사정들이 있었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 신이 내린 징벌도 신이 내준 과제도 모두 그 안에 있다. 원해서 운명이 아니다. 원하지 않아서 운명도 아니다. 그냥 돌아갈 곳이 있으면 그곳이 내 집이다. 원래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면 그곳이 운명이다. 돌아갈 곳이 있어야 박차고 나가기도 한다. 그것이 운명이다. 박차고 나갔지만 끝내 도깨비에게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고 만다. 다시 똑같은 일상이 시작된다. 전혀 똑같지 않은 일상이 시작된다.
PPL은 그냥 재미있는 드라마를 볼 수 있게 해준 보답이라 여기면 된다. 한두푼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광고만 받아서는 배우들 출연료며 스태프 월급도 제대로 챙겨주기 어렵다. 지금 시청자가 보고 있는 PPL이 작가에게 원고료가 되고 배우에게 출연료가 되며 각종 제작에 필요한 비용들을 충당해준다. 그래서 드라마가 재미있다.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다. 인내는 그렇게 비싸지 않다. 그리 길지도 않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