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 클라이막스, 위기, 긴장과 불안과 재미의 이유

까칠부 2017. 1. 3. 04:57

대부분 드라마는 해피엔드로 끝난다.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라도 최소한 주제에 해당하는 사건 만큼은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으로 마무리짓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긴장하고 동요하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사실 그것이 진짜 드라마의 재미다.


분명 김사부(한석규 분)가 이길 것을 안다. 김사부가 수술에 실패하고 도윤완(최진호 분)의 의도대로 더이상 의사로서 살 수 없게 된다면 오히려 재미가 없다. 권력을 가진 쪽이 이기는 것이야 너무 당연하다. 높은 자리에 앉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하는데 이기지 못하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의사로서는 김사부가 위일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도윤완이 비교할 수 없이 훨씬 위다. 무작정 찾아가 주먹부터 날리는 일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차피 현실에서도 약자인 김사부가 드라마에서도 진다. 거기에 무슨 재미가 있고 감동이 있을까. 그런 반전을 기대한다면 그냥 신문 사회면이나 읽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약자가 강자를 이긴다. 선하고 정의로운 약자가 부정하고 악한 강자를 마침내 실력으로 누르고 승리한다. 멀리는 구약의 다윗과 골리앗서부터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인류문화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다. 그래서 항상 주인고의 맞은 편에는 사악한 만큼이나 강한 적들이 등장한다. 아니 주인공이 마침내 쓰러뜨려야 할 적이기에 그만큼 그들은 강해야 하고 강한 만큼 사악해야만 한다. 사악하기 때문에 강해야만 한다. 심지어 실력마저 주인공보다 뛰어나 운이나 기적에 기대야 하는 경우마저 있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도 김사부는 한때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의사였다. 수술만 시작하면 어쩌면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긴 그래서 윤서정(서현진 분)이라는 패널티가 존재한다.


실력이 뛰어나서 이기는 것도 사실 재미없다. 결국 의사의 세계에서도 실력이 힘이고 지위다. 곧 죽을 사람도 살려내는 실력을 가졌는데 홀대하고 배제하는 자체가 사실 이상한 것이다. 수술 잘하는 의사가 더 많은 것을 가진 환자를 수술실에서 살리고 그 도움을 받아 마침내 모든 의도한 것들을 이룬다. 역시 너무 뻔하고 재미없다. 그래서 제약을 가한다. 김사부의 실력으로도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6시간이라는 시간의 제한과 김사부에 비해 터무니없이 모자라는 윤서정과 강동주(유연석 분), 도인범(양세종 분)등의 젊은 의사들이다. 의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돌담병원의 열악한 환경도 한 몫 한다. 수술경험이 부족한 윤서정은 끝내 실전에 들어가서 해서는 안되는 실수를 저지르고,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의 다급한 사정은 수술을 앞두고 또다른 만만치 않은 수술에 들어가도록 만든다. 벌써 윤서의 실수로 10분이 늦춰졌는데 바로 직전까지도 6시간을 훨씬 넘었던 예정수술시간을 어떻게 더 단축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차라리 예고편을 생략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예고편을 모두 보고야 말았다. 수술이 끝나고 신회장(주현 분)이 깨어나는 것을 걱정하는 신이사(김혜은 분)의 모습도 보였다. 수술에 실패했다면 굳이 김사부가 기자를 만나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미루어 아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어떻게 김사부는 수술에 성공하는가. 윤서정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강동주와 도인범이 다른 수술을 먼저 집도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음에도, 그런데도 어떻게 김사부는 아무리해도 불가능하기만 했던 수술시간을 6시간 이내로 단축할 수 있었던 것인가.


하긴 그래서 드라마는 스토리가 아닌 텔링이라 하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는 비슷한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다. 장르만 다를 뿐 '낭만닥터 김사부'만 하더라도 전형적인 무협의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경험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 시작하는 그 순간에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그러기까지 어떻게 그 과정들을 꾸미고 채워넣는가의 차이인 것이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이려 김사부는 거의 발광에 가깝게 고민하고, 김동주 역시 그런 김사부를 위해서 반대하던 수술이지만 조금 전까지 치고받고 싸웠던 도인범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의사로서 바른 길을 가고자 하는 도인범의 고민과 결정은 전회에서 김사부로부터 야단맞던 장면과 대비된다. 그는 처음 김사부가 판단했던 것처럼 원래부터 의사였다. 단지 아버지의 전화가 그를 조금 멀리 돌아가게 했을 뿐. 윤서정의 컴플렉스와 불안이 수술실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런 윤서정마저 긴박한 수술의 와중에 김사부은 처음 그녀를 구했을 때처럼 억지로 붙잡아 이끈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전장에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걸음씩을 내딛는다.


적은 어디에나 있다. 위기는 아무때나 들이닥친다. 그것을 딛고 넘어선다. 이기고 나아간다. 모든 영웅물에서 보이는 공통된 플롯이다. 그들은 영웅이며 전사다. 단지 그들의 전장은 수술실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그래서 끝내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수술실 밖은 깎아지른 천길 낭떠러지다.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는 올라올 수 없다. 어디 숨을 수도 없다. 절박함이 긴장과 불안을 고조시킨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그건 나중의 이야기다. 지금 당장은 위기다. 지금 당장은 앞을 알 수 없는 두렵고 불안한 상황이다.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도인범의 결심이 너무 빠른 것도 아버지 도인완이 강요한 조건의 위험함이 대신해준다. 김사부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동기였고, 우연화(서은수 분)에게 애꿎게 화를 내는 것은 내면의 갈등과 동요의 표현이었다. 충분히 고민했고 충분히 갈등했다. 동기도 이유도 충분했다. 더구나 그토록 자신을 꺼리고 싫어하던 강동주가 먼저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사실 외통수다. 여기서 거절한다면 도인범의 캐릭터는 갈 곳이 없다. 여기서까지 도망친다면 도인범의 캐릭터는 어디에도 있을 곳이 없다.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에 어울리는 지독한 긴장감이다. 의도적으로 긴장에 위기감을 더한다. 불안에 불안을 더한다. 김사부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그 위기와 불안의 밖에 도윤완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긴장하며 안타까워한다. 이 수술의 결과에 모든 것이 달렸다. 도윤완이 불러온 기자는 또다른 숨겨진 패다. 뻔해도 드라마는 재미있다. 항상 반복되어도 매번 통하기에 결국 그것을 정석이라 부른다.


역시나 놀리고 싶다. 짓궂게 곯려주고 싶다. 그만큼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만큼 좋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뻔히 보이는데 아닌 척 고집을 부리는 윤서정의 모습이 있지도 않았던 먼옛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딱 곤란할 정도에서만 멈춘다. 오늘만 날이 아니다. 한 걸음씩 오늘도 그들의 시간은 지나간다.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