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김사부 - 돌아온 강동주, 마지막 숙제를 앞두다
그러니까 드라마의 화자인 강동주(유연석 분)야말로 원래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이다. 강동주로부터 시작되었고, 강동주를 중심으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고, 이제 강동주를 통해 그것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인 강동주의 옛기억으로 돌아가 오랜 상처를 딛고 마침내 과거의 족쇄로부터 해방되도록 한다. 김사부(한석규 분)를 스승으로 여기고 그를 닮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이야기는 거의 마무리되었다. 당장 윤서정(서현진 분)만 해도 도윤완(최진호 분) 원장과의 관계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과거의 족쇄로부터 거의 풀려난 상태다. 더이상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문선생의 환각도 보이지 않고 여전히 비밀로 하고는 있지만 강동주의 마음도 솔직하게 받아들인 상태다. 김사부로부터도 인정받아 신회장(주현 분)의 인공심장을 교체하는 큰 수술에서 어시스트를 서며 오랜 소원도 이루었었다. 남아있는 것은 강동주와의 관계를 공식화하는 것인데 도윤완 원장과의 관계가 그 열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문선생보다 훨씬 이전 윤서정을 옭매는 트라우마의 정체일지 모른다.
김사부의 남은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전개로 보아 강동주의 과거와 닿아 있지 않을까 싶다. 강동주가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 - 다름아닌 의사에게 외면당하고 방치된 채 허무하게 죽어간 아버지의 기억이 과거 부영주이던 시절의 김사부와 닿아 있다. 김사부가 말하지 않은 진실을 밝히려 오기자(김민상 분)가 강동주의 어머니를 찾아가고 있었다. 김사부가 진실을 밝히기를 포기하고 순순히 물러나 돌담병원에 숨어지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진실을 밝히는 대신 한 아이를 지키고자 했었다. 그리고 분명 그 사이에 더이상 부용주가 아닌 김사부라 불리기를 원한 이유가 숨어있을 것이다. 더이상 자신은 과거의 부용주가 아닌 장현주가 부르던 김사부로 살아가려 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어째서 14년 전 김사부는 장현주에게 당당히 자기가 부용주라 밝히지 못했던 것일까. 물론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자기의 이름을 대고 아느냐 물으면 당황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김아무개라는 가명은 너무 성의가 없었다. 그냥 듣기에도 진짜이름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름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이름임에도 마치 본명인 듯 해맑게 불러대는 장현주의 모습에서 눈치를 챘어야 했다. 어떤 거리낌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도윤완이 부용주를 자기가 만들었다 말한 것도 아주 거짓말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김사부가 처음 아예 대놓고 출세만을 쫓던 강동주의 속물적인 모습에 경멸과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만일 그렇다면 14년 전 그날부터 시작된 김사부의 여장은 강동주에게서 끝나게 될지 모른다. 도윤완에게는 김사부를 곤란케 만들 마지막 카드지만 김사부에게도 오랜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마지막 단서다.
과연 권력의 정점에 서려면 무엇보다 인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모두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이 가지는 어두운 그늘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욕망이고 충동이다. 어떻게 욕망으로 상대를 유인하고 충동으로 그 등을 떠밀 것인가. 마치 자신이 의도한대로 충실히 움직여주는 꼭두각시 인형같다. 강동주의 약점이 무엇인지 안다. 강동주에게 가장 취약한 어두운 그늘이 어디인가도 안다. 그러고보면 도윤완이 김사부를 싫어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약점이 없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약점을 쥐고 흔들어야 하는데 모든 것을 포기한 김사부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강동주의 오랜 트라우마를 이용해서 김사부를 공격하는 무기로 삼는다. 역설적으로 덕분에 김사부가 감추고 있는 오랜 비밀을 엿볼 단서가 드러나게 되었다.
오연화(서은수 분)가 실수로 응급환자의 패딩을 가위로 자르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당황한데다 서툴러서 저지른 어처구니 없는 실수인데 마치 허공에 흩날리는 거위털들이 눈송이같고 꽃잎 같았다. 어수선하게 거위털을 털어내며 환자를 살피는 어이없는 상황 가운데 마치 눈이 내리는 듯 꽃잎이 흩날리는 듯 무언가 설레며 기대감같은 것이 생기게 되었다. 마침 응급실로 들어서던 김사부의 표정도 그것을 말하는 듯 싶었다. 그리고 언제 깨어날까 마음을 조이던 신회장의 손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참 애매했다. 도대체 언제쯤 깨어나야 적당히 긴장감도 주면서 작위적이지도 않으면서 수월하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연출의 승리였을까. 아니면 대본의 승리였을까.
신회장을 이원하려 내려온 본원사람들과 장기태(임원희 분)를 중심으로 막아서는 돌담병원 사람들과의 대결은 또 하나 감탄을 자아낸 장면이었다. 상당히 급박한 부조리한 상황인데도 마치 미식축구에서 스크럼대결을 하듯 과장된 연출과 연기로 허탈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리 대수롭지 않다. 그렇게 대단하지도 심각하지도 않다. 사람의 악의도, 욕망도, 선의도, 사랑도, 고작해야 이정도 한바탕 헤프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로 신회장이 마침 깨어났으니 굳이 그렇게 몸까지 다쳐가며 뚫고 막는 것이 의미없어지기는 했다. 인간이란 얼마나 어리석고 그래서 얼마나 우스운가. 사람 사는 일이란. 페이소스라는 것일까. 한 편으로 서글프기도 하다. 그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자신의 의지도 아니었다.
신회장이 깨어날 것은 알았다. 아니면 드라마가 진행되지 않는다. 문제는 언제 깨어날 것인가였다. 너무 빠르면 재미없고, 너무 늦이면 너무 지루하다. 적당한 때여야 했는데 하필 적절한 장면과 연출들이 그 순간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새삼 작가와 제작진에 감탄하는 이유다. 작위적인데 전혀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공간에서 전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퍼즐 조각처럼 전체를봤을 때 겨우 모든 것이 이어진다. 빠르게 교차하는 장면들이 서로 겹치며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과연 김사부가 아직도 감추고 있는 과거의 비밀은 무엇일까. 오기자가 마침내 찾아내게 되는 진실이란 또 무엇일까. 다행히 의심하기보다 대놓고 따져묻고 있었다. 홀로 속에 품은 채 대책없이 키우기보다 아예 솔직하게 모두의 앞에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원장이 찾아간 우동집에도 어떤 사연이 감춰져 있을지 모른다.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다. 신이사(김혜은 분)는 뜻밖에 효심깊은 딸이었다. 어쩌면 14년 전 김사부와 불편하게 맺은 인연도 단지 오해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마지막은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한바탕 위기를 넘겼다. 돌담병원의 폐쇄까지 가는 위기를 넘기고 오히려 기회를 손에 쥐었다. 김사부가 바라는 큰그림은 외상전문센터였다. 김사부가 도달하려는 목표다. 그 앞에 마지막 돌부리처럼 강동주가 과거의 일을 들추며 그와 마주선다. 의사로서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강동주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위기는 새로운 기회의 시작이다. 거의 다 와 간다. 그림이 완성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