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 인간의 감정과 의사의 판단, 너 의사잖아!

까칠부 2017. 1. 11. 04:57

도윤완(최진호 분) 원장의 가장 큰 실수는 강동주(유연석 분)가 의사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아니 잊었다기보다는 일부러 무시했다 보는 편이 옳다. 도윤완의 세계에서 의사란 단지 사람을 살리는 의술이라는 기술을 가진 뭇개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욕망에도 약하고 의심에도 쉽게 먹히고 만다.


의심이란 혼자서 자라는 독과도 같다. 다른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의심은 의심만을 먹고 자란다. 의심은 의심만을 타고 자라난다. 어느새 자신보다 더 커져버린 의심은 자신마저 집어삼키고 만다. 혼자만의 망상으로 만들어낸 사실들을 진실이라 여기고 그에 휘둘리기 시작한다. 무어라 말해도 믿지 않는다. 이미 추론이라는 이름의 망상으로 결론까지 내버린 이상 어떤 말로도 그를 납득시키거나 이해시킬 수 없다. 도윤완이 바란 상황이었다. 강동주가 영영 김사부(한석규 분)를 등지게 만들겠다.


하지만 강동주는 의사였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계기가 되었지만 그동안 김사부의 혹독한 단련으로 어느새 어엿한 한 사람의 의사로 자라 있었다. 여전히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응급실 구석에서 쓸쓸히 죽어간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를 가슴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의사로서 그동안 보아온 김사부에 대한 존경과 신뢰 또한 놓지 않고 있었다. 분명 의사로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의사인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 그리해야만 했을 것이다. 묻는 것은 의심이 아니다. 물어야 할 것을 묻지 못하고 혼자서 없는 답을 찾아 헤맬 때 의심은 따라서 자라난다. 진실과 마주하지 못하는 비겁함이며 진실과 마주하지 않으려는 나태함이다. 그러나 강동주는 김사부에게 물었고 답을 들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여전히 강동주의 안에서 아버지의 아들인 자신과 의사인 자신이 싸우고 있었다. 환자에게 화를 낸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해 화를 낸 것이었다. 아버지를 방치해 죽게 만든 김사부를 용서해서는 안되는데, 그러나 의사로서 김사부의 판단이 옳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김사부가 옳았다고 인정하기에는 아버지의 죽음이 가엾고 그 죽음을 부여잡고 여기까지 온 자신이 가엾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기에는 의사로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불쌍하다. 무작정 의사인 자신을 의심하고 비난부터 하는 환자의 가족을 보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면서 의사로서 그런 모습을 보며 느끼는 답답함이 자신을 향해 투영된다. 여전히 억울하게 죽음 아버지를 위해 분노하고 원망해야 하는데, 하지만 의사로서 그것은 부질없는 한풀이고 악다구니에 지나지 않았다. 인정할 수 없어서 고집을 부린다. 그러나 결국 답은 강동주 자신에게 있었다.


강동주를 위한 배려다. 아주 깔끔하다. 군더더기 하나 없다. 도윤완으로 인해 김사부는 강동주의 아버지가 먼저 응급실로 실려왔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VIP의 집도를 했었다. 아니더라도 당시 상태는 강동주의 아버지보다 부용주가 집도한 VIP쪽이 더 위급했었다. 굳이 김사부가 강동주 앞에서 사과하거나 반성할 일도, 강동주가 애써 김사부를 이해하고 용서해야 하는 상황도 만들지 않는다. 그만큼 고민은 짧다. 의사로서의 판단이 김사부의 당시 결정을 이해하게 만든다. 어찌되었거나 강동주도 의사였으니까. 오랜 트라우마를 뛰어넘는다.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닌 의사로서. 의사인 자신을 위해서. 마지막 봉인을 푼다. 강동주의 성장이 끝나는 순간 김사부도 마지막 싸움을 시작한다.


단지 진실을 알고 싶다. 진실을 알고 싶으면 당사자를 찾아가 물으면 되는 것이다. 멋대로 상상하지 말고, 멋대로 망상으로 상상을 키우려 하지도 말고, 그냥 찾아가서 솔직하게 사실을 들으면 되는 것이다. 굳이 알아낸 사실을 세상에 알릴 필요도 없다. 누군가에 전할 필요도 없다. 진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강동주의 신뢰와 용기가 도윤완의 마지막 함정을 멋지게 기회로 바꿔 놓는다. 모든 방황과 혼란이 끝났을 때 강동주의 말과 태도는 어느때보다 확고하다. 다시는 흔들리지 않으려는 다짐이다. 그리고 그런 강동주의 성장을 지켜보며 스승이자 아버지로서 김사부 역시 미뤄두었던 싸움을 시작하려 한다. 한 번도 자신의 결정에 대해 후회해 본 적 없느냐는 말은 질타였다. 마음속 깊이 눌러두고 있던 후회가 잠자던 김사부를 일깨운다.


희생은 기만이다. 양보는 오만이다. 누가 누구를 위하는가. 누가 누구를 대신하는가. 단지 일곱사람을 지키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도윤완은 그 뒤로 더 커져서 병원장까지 되어 거대병원을 오염시키고 있다. 거대병원의 젊은 의사들까지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그렇게 자신이 있는 돌담병으로 흘러든 것이 강동주와 윤서정(서현진 분), 그리고 도윤완의 아들 도인범(양세종 분)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으로 인해 살아났지만 더 큰 죄를 가슴에 간직하게 된 그 사람들은 어찌할 것인가. 평생 양심의 고통으로 괴로워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양심을 죽이고 마비시키거나. 김사부는 그때도 어른이었다. 책임지는 방법을 알았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희생을 책임이라 여기며 그로부터 도망치고 만다.


돌담병원이 몽땅 서울의 본원으로 올라간다. 도윤완 원장의 가로채기에 대한 대응으로 직접 도윤완의 준비한 축하연회장으로 달려간다. 그의 손에는 오기자(김민상 분)가 건넨 과거 도윤완 원장의 부정자료가 들려 있었다. 도윤완이 감추려한 진실이 이번에는 도윤완을 옭죄는 칼날이 된다. 결정적인 순간 송현철(장철진 분)마저 귀찮음을 이유로 도윤완을 외면한다. 딱 그 정도의 관계였다. 단지 이용물로써 자신의 사람인 송과장을 돌담병원으로 내려보냈고 단지 이용물로써 돌담병원에 남아 본원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충성은 상호적이다. 덕분에 외과장까지 되었지만 지금은 분명이 홀대다. 파탄이 시작된다.


응급실을 슬쩍 둘러보는 신회장의 눈빛이 심상치않다. 너무 해피엔드면 그것도 꽤나 싱거운 노릇이다. 강동주가 과거의 주박에서 풀려나듯 윤서정도 조금은 홀가분해진 느낌이다. 서울행은 김사부는 물론 윤서정을 위한 이벤트이기도 하다. 윤서정이 반드시 풀어야 하는 고리가 그곳에 있다. 도인범이 벗어나지 못한 아버지의 그늘이 그곳에 있다. 그들을 등뒤에 세우고 김사부가 도윤완의 앞에 마주선다.


어쩔 수 없는 가족이니까.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는 가족이니까. 그리고 자신은 의사니까. 그렇다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의사로서의 이해와 판단이 그보다 우선할 뿐이다. 잘못된 결정에 대한 후회도 반성도 딛고 앞으로 나간다.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짜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