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도깨비 - 분노보다, 원한보다, 그보다 사랑, 지켜야 하는 이들... 도깨비 죽다

까칠부 2017. 1. 14. 04:22

복수가 아니었다. 분노가 아니었다. 원한이 아니었다. 동생 김선(김소현 분)이 죽으면서 느꼈던 감정이 자신을 죽게 한 어린왕에 대한 원망이 아니었던 것처럼.


남자는 원래 지키는 존재였다. 무장이란 또한 지키는 존재여야 했다. 왕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그러나 결국 아무도 지키지 못했다. 누구도 무엇도 지키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것이 원한이 되어 남은 것이다. 지키지 못하도록 자기를 멀리하고 막아서고 끝내 죽게 한 그를.


복수란 단지 자기가 지키지 못한 이들을 위한 한풀이에 불과했다. 지키지 못했으니 대신 그들을 위해 복수라도 해야겠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억울함이 가실 수 있게. 그들의 원통함이 덜어질 수 있도록. 하지만 결국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기만에 불과했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다.


삶이란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불멸이라는 형벌로부터 자유롭고자 해서도 아니었다. 비로소 죽음을 각오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사랑하는 누이의 현생 써니(유인나 분)와 사랑하는 도깨비신부 지은탁(김고은 분)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지키지 못했던 자신의 왕 왕여(이동욱 분)를 위해서도. 박중헌이 죽어야 비로소 모두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게 자기가 만족하면 되었다. 악령이 되어서도 결국 자기로 인해 도깨비 김신(공유 분)은 죽었다. 살아서도 자신으로 인해 죽었고, 죽어 도깨비가 되었어도 자신으로 인해 죽었다. 통쾌하다. 만족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정작 김신 자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보다는 마침내 자기 손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냈다는 만족감이 더 크다. 그로 인해 자기가 죽게 되었어도, 먼지가 되어 영원히 소멸하는 처지가 되었어도, 그래서 사랑하는 지은탁이 눈물짓고 있음에도. 마지막으로 왕여에게 900년동안 미뤄두었던 보고를 한다. 이렇게 자기는 왕과 모두를 지키고 죽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아니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을 살지 못했고 죽고자 하는 곳에서 죽지 못했다. 한 걸음만 더 내딛을 수 있었다면. 몇 걸음만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면. 그래서 전하고자 했던 그 말을 왕에게 전할 수 있었더라면. 이번에는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죽었다. 아무 후회없이 마지막까지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다했고 그리고 마침내 자신은 죽음을 맞게 되었다. 후회가 있을까. 이타란 극단의 이기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지은탁은 슬퍼해도 슬퍼하는 지은탁이 살아있음에 웃을 수 있다.


용서해야 할 이유를 찾아낸다. 900년의 원한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사그라들 리 없다. 그래서 박중헌이 악령이 되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원한이란 그런 것이다. 원한에 대한 집착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게 원한이라는 독이 자기를 상처주고 자기를 망치고 만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정작 죽이겠다고 달려가서 저승사자를 끝내 죽이지 못하고 놓아둔 채 혼자서 허튼 생각에 빠지고 만다. 물론 이제 더이상 저승사자는 전생의 왕여가 아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어도 그동안 함께한 시간들이 그를 단지 자신의 친구인 저승사자라 여기게끔 만들고 만다. 그리고 억지로 풀어낸 감정의 바닥에 진짜 자신이 부여잡고 있던 진짜 집착이, 미련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 그 한 마디를 전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이 도깨비가 된 이유였을까.


박중헌과는 달랐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는 자신의 죽음을 돌아봤고 함께 자신의 삶 역시 돌아봤다. 그리고 하나씩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만들어갔다. 어떤 것들은 지켰고 어떤 것들은 지키지 못했다. 마치 수만의 생을 살면서 그 모든 삶을 기억하듯 차곡차곡 자신의 기억들을 쌓아왔다. 이제는 죽어도 좋겠다 여길 정도로. 그래서 기회였다. 그를 위해 더해준 수많은 삶이었다. 운명이란 신의 물음이었듯 김신은 그에 충실히 답했다. 그곳은 그에게 죽어야 할 곳, 자신의 삶을 끝내야 할 곳이었다.


왕이란 원래 고독한 자리다. 가장 존귀한 지존의 자리이기에 누구와도 나눌 수 없고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다. 그같은 지독한 고립감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보통의 정신으로는 안된다. 그래서 많은 왕들은, 심지어 역사에 철혈의 군주라 기록된 이들까지 가까운 곳에 의지할 곳들을 두었다. 인간이란 약하기 때문이다. 약하기 때문에 독해지고, 독해지면서 악해지고, 그러면서도 후회를 남기고, 후회하지 않으려 더 독해지고 악해진다. 자기마저 돌아보지 않는다. 한 편으로 그런 감정은 비단 왕여 자신만의 것이었을까.


박중헌이 왕여마저 원망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김신이 그랬던 것처럼 박중헌 역시 자신이 세운 자신의 왕을 지키지 못했다. 자식이라 여겼고 아버지라 여겼지만 끝내 왕으로 하여금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자책이 원한이 되는 것은 도깨비를 통해 이미 확인한 바다.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자신의 죄악만을 끌어안고 왕여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도피한다. 지키지 못했을지언정 무엇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지옥의 형벌을 겪고도 망각으로 도망쳤다. 900년이라는 시간은, 그리고 저승사자라는 형벌은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 이번에는 결코 도망치지 않는다.


가장 불쌍한 것은 써니다. 몰라도 되는 전생을 떠올려버리고 말았다.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전생을 떠올려 버린 탓에 전생에 구애되고 말았다. 없던 오라비가 생기고 자기가 좋아한 사람과의 불편한 기억에 구애되고야 만다. 그래도 끝내야 했다. 이번에는 마무리지어야 했다. 다행히 이번 생에서는 기회가 남아있었다. 이번생에서는 행복할 수 있기를. 모든 기억들을 뒤로 한 채 그저 오로지 자신만 행복할 수 있기를.


단 한 가지 후회다. 단 한 가지 미련이다. 자신에 대한 분노를 스스로 감당하기 위해 타인을 향한 원망으로 바꾸고 만다. 900년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이루려는 그것. 하나의 이야기가 그렇게 끝나간다. 도깨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