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정기 - 절묘한 인과와 구조...
첫째 위소보는 문맹이다. 글을 읽을 줄 모른다. 다시 말해 지배층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학문적 소양이 결여되어 있다. 그렇다고 무공이 뛰어난 것도 아니니 아무리 큰 야심을 가졌어도 정작 황제인 강희제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적당히 부패하고 간사하기까지 하니 사류나 무장들 사이에 인망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즉 강희제의 그늘이 사라지면 위소보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역대 많은 중국의 황제들이 현명한 대신이 아닌 부패한 환관에 의지해 정치를 해왔던 이유였다. 환관들은 그나마 황제의 입장에서 안심해도 된다.
둘째 위소보는 기루에서 태어난 하류층 출신이다. 자란 환경부터 오래도록 성실하게 노력하기보다 당장의 임기응변이나 일확천금에 기대는 것이 더 익숙한 환경이다. 더구나 어머니가 기녀다. 어려서 보아온 이성이란 거의 남성을 상대로 웃음을 팔며 돈을 버는 기녀들이었다. 위소보가 무려 7명이나 되는 마누라를 두면서 보였던 여성을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이나, 그러면서도 그런 여성들에게 무한한 관용을 보이는 것은 모두 이와 관계가 있다. 즉 위소보에게 여성이란 기본적으로 기생이며, 하지만 어머니가 기생이었기에 이들 기생들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무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진짜 여자들 대하는 것 보면 뭐 이런 개자식이 다 있나 싶다.
그리고 셋째 위소보의 캐릭터는 분명 루쉰의 "阿Q정전'의 영향을 받았다. 하긴 김용이 언제 그런 하층민의 삶을 경험해보기나 했겠는가.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다. 오늘을 넘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루의 버거움이나 고단함도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고 넘어간다. 원래 가난한 이들은 훨씬 더 비겁하고 비루하다. 위소보라는 캐릭터에 많은 이들이 이끌리고 마는 이유. 몸은 귀한데 마음은 여전히 양주의 여춘원 그대로다. 그런데 그 하는 꼬라지가 대단하신 고관대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역설이면서 풍자의 지점이다. 결국 양아치들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루쉰이 비판하고 싶었던 중국의, 아니 아시아의 병폐다.
소설과 드라마를 같이 보고 있는 중이다. '녹정기2008'은 생각보다 여자들이 그리 예쁘지 않은 편이다. 여자들 예쁘게 나온다 해서 기대하고 봤는데. 신룡교 홍부인 정도나 예쁘다 할까 나머지는 글쎄... 쌍아도 내 타입은 아니고. 소설을 드라마에 맞게 아주 잘 각색한 것 같다. 대만에서 만든 허접한 무협드라마보다는 낫다. 무협드라마는 역시 중국에서 만들어야 한다. 재미있게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