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마치 먼 옛사랑처럼 새롭게 사랑하며, 삶의 이유를 말하다
헤어짐이 아니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죽음속에서 삶을 찾듯 이별이 있기에 새로운 인연과도 만난다. 먼 시간을 기다려 만나는 운명처럼 그렇게 매순간 새로운 인연은 자신을 기다린다. 생을 넘어 이어지는 인연처럼 예정된 운명이 저 앞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기약없는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간절히 사랑하고 있기에 매순간 무심히 스쳐지나는 작은 원망과 미움의 감정마저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김선(유인나 분)이 망각을 가장하며 저승사자 왕여(이동욱 분)를 외면하고 홀로 떠나기를 결심한 이유였을지 모른다. 끝나지 않았기에 시작도 할 수 없다. 제대로 끝내지 못했기에 새롭게 시작할 수 없다. 김선과 왕여의 세번째 생은 그렇게 끝내지 못한 전생의 사랑을 끝내는 생이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한 부분이다. 이별이 삶의 가운데 수많은 만남과 인연의 하나에 지나지 않듯. 죽고 태어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그런 영원의 시간을 살아간다. 한 사람씩 계속해서 떠나보내며, 그러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서. 체념의 가운데 돌아온 지은탁(김고은 분)은 그런 매순간들에 대한 보답이다. 먼 옛사랑처럼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끝없이 이어지는 모든 만남과 인연과 기회와 가능성들을 인도인들은 윤회라 불렀다. 단지 영원을 산다는 것은 수많은 삶을 하나로 사는 것 뿐이다.
다시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까지 한다. 운명이 예정한대로 도깨비신부가 된다. 도깨비신부를 신부로 맞는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순간 지은탁은 인간의 의지로서 죽음을 선택한다. 삶을 포기한 죽음이 아니다. 더 큰 삶을 선택한 죽음이다.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축복이자 저주, 인간의 자유의지가 운명을 바꾸고 신의 의지마저 변화시킨다. 결국은 삶이다. 매순간. 바로 여기 바로 지금 바로 나, 그리고 바로 그.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단 하나 자기가 살아야 하는 지실한 이유만을 남긴다.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살짝 지루했었다. 조금 - 아니 상당히 느렸다. 담담히 옛이야기하듯 매순간을 다정하게 풀어낸다. 영원을 사는 도깨비와 순간을 살아가는 인간,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저승사자. 저승사자가 되어야 했던 이유는 스스로 삶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윤회하듯 수많은 죽음을 직접 겪으며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해 간절하게 느끼게 된다. 살아야 하는 이유이고 존재하는 이유다.
마침내 생을 넘어서도 인연은 이어진다. 미처 이루지 못한 인연이 생을 넘어까지 이어지며 결실을 맺는다. 슬프고 아팠던 사랑도 잊는다. 슬프고 아팠던 사랑까지 모두 기억하며 새롭게 사랑을 시작한다. 하나의 삶을 수많은 삶처럼. 사람은 사랑하고 그리고 살아간다. 그리고 만난다. 해피엔드다.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