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와 표절의 흑역사...
진짜 아주 오래전 일이다. 당시 내 취미가 오래된 만화방을 찾아가 그보다 더 오래된 만화책들을 찾아읽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되었거나, 아니면 막 새로 열어 어디선가 잡다하게 사모은 만화책들이 잔뜩 쌓여있는 만화방이 주타겟이었다. 덕분에 훨씬 오래된 만화들도 적잖이 찾아서 읽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황재가 그린 '해바라기 하숙집'이라든가, 이재학이 그린 '원더공주'같은 만화들이다.
다카하시 루미코의 '메종일각'을 보기 전에 벌써 황재의 만화로 '해바라기 하숙집'을 읽고 있었다. 아다치 미츠루라는 이름을 알기 전부터 황재를 통해서 '나인'을 읽은 바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인'의 뒷부분은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로 읽을 수 있었다. '에어리어88'의 다른 제목이 '창공 1940시간'이었던가 그랬을 것이다. 허영만이 그린 '우주흑기사'는 대가의 흑역사로 꽤 유명하다. 하여튼 한국만화의 원로들치고 표절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만...
하지만 사실 당시 만화가들도 할 말은 있었다. 아예 원작을 갖다놓고 베껴그리라 시키는데 뭘 어쩌란 것인가. 당시 한국만화가들이 받는 원고료란 참 한심한 수준이었다. 아니 사실 지금도 정작 만화가들이 받는 원고료의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다. 일본에서도 정작 만화가들은 원고료수입으로 먹고 살지 않는다. 원고료는 구색이고 그보다는 단행본의 인세나 작품의 저작권 자체에 대한 라이센스가 더 중요한 수입이 되고 있다. 문제는 불과 80년대까지도 만화가들에게 자기 작품에 대한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합법적인 해적판이 가능했던 시대였다. 아예 만화 원고를 출판사에서 사들여서는 아무데나 떨이로 넘기는 과정에서 작가 자신도 모르는 판본이 어디선가 출판되어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었다. 당연히 그렇게 내놓는 책들은 따로 작가에게 돈을 지불하지도 않았다. 몇 권의 책이 팔리든 만화가와는 정작 아무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의 유일한 수입일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원고료마저 볼모잡고 팔리는 만화를 그리라 윽박지르는데 만화가를 포기하지 않는 한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다.
원흉은 '합동출판사'였다. 70년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만화계를 쥐락펴락하던 나름대로 거대자본이며 권력이었다. 한 마디로 합동출판사를 거치지 않고서는 어떤 만화책도 대본소로 들어갈 수 없었다. 대본소가 거의 유일한 소비처이던 시절 대본소에 팔 수 없다는 것은 만화를 팔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그 합동을 주도한 것이 이영래였다. 만화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돈이 된다는 소리에 만화산업에 뛰어든 말 그대로 장사꾼이었다. 작가야 어떻든 작품이야 어떻든 만화책이 많이 팔려 돈만 많이 벌면 된다. 만화가들은 단지 합동문화사의 독점적 구조 아래 돈벌어다주는 노동자로만 여겨지고 있었다. 화실유지도 못하는 원고료에, 작품에 대한 권리는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서, 돈되는 만화를 그리라 강제하기도 한다. 그리기 싫어도 합동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면 시키는대로 표절이든 베끼기든 뭐든 그려야만 했었다.
말 그대로 한국만화의 암흑기였다. 만화에 대한 어른들의 부정적인 시각은 이때 만들어진 것이 상당하다. 공급까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니 그저 권수로만 아예 세트로 대본소에 엄기고 있었고, 그마저도 다시 권수를 나누어 이익을 극대화하려 시도하고 있었다. 만화책은 얇았고 종이도 인쇄질도 형편없었다. 내용도 성의가 없었다. 그래도 만화책은 팔렸다. 대본소는 만화책을 사야만 했다. 그리고 그 이익을 고스란히 합동의 대표이던 이영래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이영래와 합동은 돈을 벌고 만화가들은 가난하기만 하다. 많은 만화가들이 견디지 못하고 아예 펜을 꺾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과연 82년 합동이 망하고 뭔가 사정이 달라졌는가. 그럴 리 있는가. 과거 깡패들이 만들어놓은 연예기획사의 관행이 지금도 여전하듯 만화계도 마찬가지였다. 차이라면 클로버문고와 보물섬을 시작으로 대본소 이외에도 사서읽는 만화책시장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고, 이재학을 필두로 한국만화계에도 공장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작가들 자신 역시 자본적으로 튼튼해졌다는 점일 것이다. 굳이 소수 출판사에 휘둘리지 않아도 활동할 공간이 늘어났고, 하루에도 몇 권 씩 만화책을 내놓을 수 있게 되면서 출판사의 입장에서도 스타작가들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합동이 망하고 출판사들도 늘었다. 하지만 그때 만들어놓은 관행들이 이후로도 이어지면서 꽤나 최근까지도 눈물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1988년이었던가. 6.29 이후 민주화 바람을 타고 해적판 만화들도 한바탕 민주화를 시도했던 때가 있었다. 성운아, 혹은 구호라는 이름으로 한국작가의 작품인 양 유통되던 일본만화들이 이번에는 일본이름 그대로 만화방의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모두 정식으로 계약되지 않은 해적판들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그때까지 한국작가의 작품이라 여겼던 몇 가지 작품들의 진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컬쳐쇼크였다. 나같은 경우 만화가들에 대한 존경심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것이 무엇인가. 한국만화의 전통이 어느 시점에서 완전히 끊어지다시피 하며 일본만화의 아류로 전락하게 되는 계기였다. 이전부터도 그랬지만 이때에 이르러 아예 많은 젊은 신인이나 지망생들이 한국만화를 부정하고 일본만화를 맹목적으로 따르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뭐라 하기에는 기성작가들이 해놓은 것이 있었으니.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아마 염숙자였던가. 무협만화였는데 정작 김용의 소설 '신조협려'의 초반을 무단으로 인물들의 이름만 바꿔 그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늦게 이미라가 고룡의 무협소설 '다정검객무정검'의 초반부를 SF로 각색해서 만화를 내놓고 있었다. 한창 재미있게 보다가 나중에 그것이 다른 사람의 작품을 무단으로 베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케가미 료이치의 그림체를 그대로 베껴그렸던 금영훈과 조남기-그보다는 이전의 필명인 안춘회를 추종했던 적이 있었다. 나도 이렇게 그렸으면. 하지만 결국 '크라잉프리맨'을 통해 이케가미 료이치의 만화를 직접 보게 되었다. 지금이야 남의 그림체 베껴그린 한심한 이름들일 뿐이다.
비단 일본만화만 베껴그린 것이 아니었다. 1980년대 중반 '공포의 외인구단'이 그야마로 공전절후의 신드롬이라 불릴만한 성공을 거두며 이현세의 이름이 알려지자 이번에는 너도나도 이현세의 그림을 따라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까치머리를 그릴 줄 모르면 만화를 그릴 줄 모르는 것이다. 심지어 당시 아이들 가운데는 누가 더 이현세와 비슷하게 까치를 그렸는가로 만화가의 실력을 평가하기도 했었다. 작가들 사이에 서로 표절하는 경우도 적지 ㅇ낳았다. 공장제가 정착된 뒤이니 단지 스토리작가만 옮겨간 경우일도 있겠다.
만화그려도 돈이 안되니까. 자존심을 지키여 해도 당장 화실유지할 돈도 없었으니까. 먹고 살려면 베끼든 뭐든 해야 한다. 작가의 자존심도 인간으로서의 자존감도 내팽개친 채 그렇게 타락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비단 만화의 경우만일까. 거대자본의 독점적 구조가, 권력과 결탁한 편법과 술수가 어떤 식으로 시장을 교란시키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가.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어쨌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