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이스 - 부족한 완급조절, 그러나 제대로 조여주는 긴박감

까칠부 2017. 2. 6. 02:58

완급의 조화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역시 쪼이는 맛 하나는 최고라 할 만하다. 그저 몇 번 방송에서도 다루었던 쓰레기아파트에 재개발로 쫓겨나는 세입자의 이야기인가 싶더니 느닷없이 옷장 너머에서 비닐에 뒤덮인 눈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옷장이 열리면서 비닐에 싸인 시체가 나타난다. 도대체 누구의, 어떻게 어떤 이유로 살해된 시체인가. 황경일(이주승 분)을 살해한 의문의 인물(김뢰하 분)이 말한 수림동 연립의 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예고편도 없다. 아주 성격나쁜 제작진이다.


아무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방안 가득한 쓰레기나 치매할머니 같은 설정은 실제 있었던 어떤 사례를 인용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느닷없이 재개발로 쫓겨나게 된 세입자의 처지도 연민을 불러일으키며 어쩌면 그것이 이번 에피소드의 주제와 관계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칼을 들고 무단으로 침입해서 난동을 부리던 세입자를 제압하고 참고인으로 집주인 박복순에게 경찰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설명해주던 무진혁(장혁 분)이 어떤 수상한 냄새를 맡은 듯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과연 수사드라마에서 경찰이 민감한 반응을 보일 냄새란 어떤 것이 있을까. 방안 가득한 쓰레기들이 사실은 어떤 의도에 의해 일부러 그리한 것이라면 이유는 하나 바로 냄새일 것이다. 그리고 다짜고짜 시체 하나가 시청자 앞에 툭 던져진다. 뻔히 예상하고 알았어도 놀라는 당연한 본능과 같은 것이다.


역시 황경일은 2년 전 살인현장을 목격했다. 기대한 것처럼 살인범과 어떤 접점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마지막 남긴 단서를 하필 모든 소리를 듣고 분석하는 능력을 가진 강권주(장하나 분)가 알아듣지 못한다. 황경일이 사건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아마도 진범과 관계가 있는 듯한 의문의 인물이 직접 황경일을 살해한다. 경찰 내부에서 그들을 돕는 조력자의 정체도 그 과정에서 드러난다. 뜻밖에 과감하다. 아니면 이 또한 또다른 사건을 위한 단서이던가. 황경일을 호송하던 강력팀 안에 조력자가 있었는데 그것이 장경학(이해영 분)을 바로 밝혀 버린다. 즉 장경학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굳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체가 드러난 장경학이 드라마에는 더 필요하다. 아마 상당히 그럴 듯한 이유와 함께 장경학이 그들을 돕는 이유가 나오고 장경학을 통해 또 하나 진범을 찾는 단서가 주어지게 되지 않을까.


어디서부터 누구까지인지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심해야 하는지도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2년 전 살인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과 그 진범에 한 발 씩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큰 적은 경찰이다. 경찰이 보면 기분나쁠 듯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경찰이 가지는 이미지란 그런 것을. 경찰의 입장만 생각한다. 경찰의 편의와 체면만을 살피며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한다. 진범이 밝혀지고 진실을 알게 되어도 오히려 그것을 묻으려 한다. 직접적으로 진범을 돕는 장경학이나 조력자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위한 행동을 보이는 청장 배병곤(조영진 분)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많은 사건에서 그런 식으로 사건은 은폐되고 억울한 이들이 희생되고 있었다.


어찌되었거나 건장한 남성이 칼을 들고 나이많은 여성을 위협하는 중이다. 그런 일들이 주위에 수도 없이 많고 대부분 별일없이 끝났다지만 칼에는 눈이 없고 자칫 잘못 실수를 하거나 하면 바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늘 있어온 일이니까. 언제나 일상에서 보아온 모습이니까.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맞아도. 여성이 남편에게 폭행당해도. 심지어 길에서 누군가에게 납치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드라마의 재미를 떠나 화가 났다. 하지만 이런 것이 바로 현실 아니겠는가.


신고센터가 중심이 된 골든타임센터란 그런 경찰의 현실에 대한 안티테제다. 대안이라기보다 그런 현실의 경찰을 비판하는 것이 더 주가 된다. 진실의 적은 경찰이다. 진실을 가리고 덮는 것이 경찰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아무도 볼 수 없느 소리가 단서가 된다. 경찰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강권주만이 가진 능력이 유일한 무기가 된다. 눈으로 볼 수 없기에 그 소리들을 눈에 보이는 증거와 증인으로 만드는 것이 무진혁의 역할이다. 새롭게 영입된 인물치고 과정이 심심하다. 씁쓸하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고.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