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정기 - 은거할 당시 위소보의 나이는?
사실 김용은 자신의 작품에서 주인공들의 나이를 제대로 적시해서 쓰는 경우가 매우 드문 아주 고약한 작가 가운데 하나다. 도무지 주인공들의 나이가 몇 살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묘사하기로는 소년인데 가만 읽고 있으면 벌써 스물을 넘긴 청년인 경우도 적지 않다. 아마 한국과 중국의 연령대에 대한 표현이 서로 다른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소년이라면 일단 10대를 이야기한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소설 '녹정기'에서도 정작 주인공 위소보의 나이는 처음 모십팔과 만날 무렵 열두어살 정도로 묘사되는 것을 제외하고 거의 10대와 소년이라는 두 가지 단어로 대충 뭉뚱그려 지나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도대체 통흘도에서 7명의 아내와 살기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가 몇 살이었고, 통흘도에서 나왔을 때 그의 아들의 나이는 몇 살 정도였으며, 은거했을 때는 과연 몇 살이었을까. 당연히 소설을 읽고 있으면 들게 되는 의문이다. 중요한 것은 김용은 무협소설가지 역사소설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단 위소보가 강희제를 처음 또래의 친구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나이차이는 많아야 한두살 정도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원래 그 나이대에는 한 살 차이도 매우 크다. 만일 위소보의 나이가 처음 묘사한 것처럼 열두어살일 때 열대여섯의 강희제를 만났다면 결코 그를 친구로 여길 수 없다. 친구 정도가 아니라 그 나이대 그 정도 차이면 그냥 아저씨다. 하지만 전혀 거리낌없이 다가가 장난을 걸 수 있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거의 동갑이라 봐야 할 것이다. 바로 그를 전제로 이후의 시간을 추정해 본다.
당장 소설에서 시간을 특정할 수 있는 사건으로 가장 처음 등장하는 것이 권신 오배의 숙청이다. 오배가 강희제가 직접 기른 친위병들에 의해 체포되어 제거된 것이 강희 8년인 1669년, 이때 강희제의 나이는 16살이었다. 그러므로 친구인 위소보의 나이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14살은 넘겼어야 한다. 두어살 정도는 대충 얼버무릴 수 있으니 그냥 편하게 강희제와 같은 16살로 단정한다. 오삼계가 운남에서 반라을 일으킨 것이 4년 뒤인 강희 12년 1673년이니 위소보가 양주 여춘원에서 아가 등 일곱명의 여인을 겁탈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어야 한다. 그때 임신해서 소전이 동추를 낳고 아가가 호두를 낳았고 건녕은 쌍쌍을 낳는다. 자식들의 나이도 그를 기준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고 바로 강희제에게 천지회 향주인 것을 들켜 억류되었다가 다시 신룡교주에게 잡혀서 신룡도로 끌려가고 통흘도로 이동했으니 이때 위소보의 나이는 오배를 제거할 당시보다 4살 더 먹은 18살 정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오삼계의 반란이 8년을 끌어 강희 20년인 1681년에 진압되었으니 손사득이 찾아와 장용, 왕진보, 조양동 등의 소식을 전한 것은 바로 그 쯤일 테고, 시랑이 대만을 평정하고 통흘도로 찾아와 그를 대만으로 데려간 것은 정극상이 항복한 그로부터 2년 뒤인 강희 22년 1683년이었을 것이다. 통흘도에 들어가서 무려 10년을 눌러산 것이다. 임신기간을 포함하면 위소보의 아들딸들은 이때쯤 모두 9살이었던 셈. 참고로 정극상이 시랑에게 항복할 당시의 나이가 12살이었으니 아가도 꽤나 어린아이를 밝히는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갓 태어난 아이를 두고 정공자 하며 쫓아다니고 있었다.
강희제가 위소보를 북경으로 불러들인 이유였던 아르바진 공략은 1683년과 86년에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번째가 천 명, 두번째가 2천명 규모였으니 위소보가 참가한 것은 이 가운데 후자인 1686년의 전투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르바진에서의 승리를 시작으로 여러차례 러시아군과의 교전에서 승리하면서 3년 뒤인 1689년에 역사적인 네르친스크조약이 맺어진다. 이때 위소보의 나이는 오배를 살해할 당시의 16살에서 20년이나 더 지난 36살, 위소보가 북경을 떠나 은거할 것을 결심한 것이 바로 이 다음이니 아무리 적어도 위소보가 은거할 당시의 나이는 30대 중반이 되는 셈이다. 아이들도 벌써 사춘기의 나이가 되었다. 하긴 그러니까 무리없이 애들까지 데리고 중원을 떠나 은거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리고 역시 참고로 위소보가 조언하여 모스크바에서 소피아가 정변을 일으켜 섭정이 된 것이 1682년으로 아직 위소보가 통흘도에 있을 무렵이었다. 원래 미래와 현재와 과거는 동시성을 가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물론 의미없는 추정이다. 원래 의도부터가 그런 시간의 흐름을 깡그리 무시한 그냥 아직 어린 소년들의 모험활극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은거할 당시에도 소설상에서 위소보의 나이는 스물을 겨우 넘긴 청년 정도로 묘사된다. 어차피 소설이라 사실 시간의 흐름 같은 것은 크게 상관없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시간은 때로 늘어나고 줄어들며 순서를 바꾸기도 한다. 다만 작가 자신이 스스로를 역사소설가라 불러달라 말하고 있기에.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사실이 뒤죽박죽이면 역사소설로는 좀 심각하지 않을까.
아무튼 나이먹고 보니 차라리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배치한 쪽이 더 흥미롭기도 하다. 소년이 청년이 되고 어느새 장년을 넘어 중년이 되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내면의 변화를 묘사하기도 그쪽이 훨씬 낫다. 나중에 위소보가 강호와 조정을 모두 떠날 것을 결심하는 계기도 훨씬 설득력이 있다. 소설에서는 그런 결정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다. 그냥 재미삼아다. 의미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