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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정기 - 위소보와 민초의 의미...

까칠부 2017. 2. 15. 01:49

이를테면 일제강점기 어느 평범한 하층민의 경우를 가정해봐도 좋을 것이다. 당연히 나라를 빼앗겼으니 다시 되찾아야만 했었다. 이민족인 일본인의 지배를 거부하고 조선인의 나라를 다시 세워야만 했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망한 나라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지배보다 더 나을 것은 무엇인가.


그나마 일본이 지배하면서 조선사회의 엄격한 신분질서도 겉으로기는 하지만 약해졌고, 무엇보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토색질을 일삼던 탐관오리도 당장은 사라지게 되었다. 칼차고 위세부리는 일본 헌병이나 일본을 등에 업고 소작인을 착취하는 지주들이야 원래 조선시대에도 있던 것들이니 크게 상관할 바 없다. 어쨌거나 그래도 조선총독부의 눈에만 잘 들면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출세도 가능해지지 않았는가. 내게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니 그것이 내 나라고 내 정부다. 내가 충성할 대상이다.


위소보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사실 대부분의 하층민들에게 정부를 이루는 것이 누구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오늘 신라가 점령하면 신라인이 되는 것이고 고구려가 점령하면 다시 고구려인이 되는 것이다. 그냥 누가 지배자가 되든 거스르지 않고 엎드려 따르기만 하면 당장 오늘 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족이 중국 강남을 점령하여 자기 영토로 삼았지만 그렇다고 강남에 사는 모든 중국인이 한족의 후예인 것은 아니다. 이민족인 만주족이 한족의 나라인 명을 무너뜨리고 중원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양주에서 몸팔아 먹고 사는 위소보의 엄마 위춘방과 무슨 상관인가 말이다.


그래도 멀쩡히 있던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들어섰으니 망한 나라에 대한 연민과 동정도 있고, 한 편으로 그 새로운 나라가 이민족에 의한 나라이고 같은 한족이 이민족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는 감정도 있다. 워낙 양주십일이라 하여 청나라 군사들이 양주에서 저지른 끔찍한 학살과 만행들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랐었다. 만주족인 청의 지배는 잘못된 것이고 언젠가 한족의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민초인 자신들이 받들여야 할 대의이고 정의다.


더구나 강호의 유협들이 말하는 의리란 온갖 협잡과 작패에 익숙한 위소보에게는 매우 신선한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원래 빈민가의 하류들에게는 의리같은 것이 없다. 양아치가 괜히 양아치가 아니다. 그나마 건달은 어느 정도 그들 사이에 통용되는 도의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밥이나 빌어먹고 사는 다리밑 거지들은 그런 것이 없었다. 깡패들이 괜히 거지왕 김춘삼을 피했던 것이 아니다. 하는 짓이 더러우니까. 괜히 똥밟고 귀찮아질 수 있으니까. 양아치가 바로 거지를 일컫던 동냥아치에서 온 것이다. 자기도 그들처럼 유협의 의리를 닮고 싶다. 그들이 주장하는 반청복명의 대의에 동참하고 싶다. 그 순간 위소보는 더이상 양주의 기생에게서 태어난 아비도 모르는 천한 신분이 아닌 대의를 함께 하는 동지가 되고 그들의 형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문제인 것이다. 태생적으로 위소보는 강호의 유협도 아니었고, 한족의 왕조인 명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하는 사류 또한 아니었다. 그렇다고 온전히 민주족의 왕조에 편입되어 있지도 않았다. 아무리 잘대해줘도 결국 청을 지배하는 것은 한족이 아닌 만주족이었다. 단지 민족만 한족에서 만주족으로 바뀌었을 뿐 그들이 지배자이고 자신은 피지배자라는 사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죽으라면 죽고 내놓으라면 내놓아야 한다. 오늘은 잘대해주는 듯 보이다가도 내일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 말로는 친구라면서 강희제는 위소보의 주위에 사람을 심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위소보가 그의 친구로 남을 수 있는 것은 감히 그를 거스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지회의 유협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강호에서 대접받으려면 일단 무공실력부터 뛰어나야 했다. 무공이 뛰어나지 않으면 아는 것이라도 많아야 했었다. 위소보가 천지회에서 대우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진근남이라는 그의 사부 때문이었다. 천지회 회주의 제자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천지회의 유협들로부터도 형제로 대우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 아니라면 기껏해야 무공도 형편없고 배운 것도 없는 양주거리의 천한 기생의 소생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진근남이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진근남을 위소보가 죽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된 뒤에조차 매몰차게 위소보를 대하는 모습이야 말로 그들의 본질인 것이다.


멸만흥한의 대의에 동참하기에는 기존의 신분이 너무 천하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새로운 왕조인 청에 충성하기에는 여전히 자신을 의심하며 감시하고 있다. 자칫 조금만 틈을 보이면 웃으며 내미는 칼날에 목이 베일 지 모른다. 자신은 황제의 친구가 아니었고 천지회의 형제도 아니었다. 누구도 진정으로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그를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조건을 달았다. 황제를 죽이라. 아니면 천지회를 죽이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들이 내세운 제멋대로의 기준에 그저 휘둘리기만 할 뿐이었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래야 하는가.


그래서 결국 의지하게 되는 것이 바로 가족이었다. 사랑하는 아내들이고,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들이고, 그리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였다. 중국인들이 중요시하는 꽌시나 멘즈란 바로 그런 역사의 결과물이다. 가족을 비롯한 자신과 직접 맺은 관계만을 중요시하며 그 이상의 보편적인 대의나 명분같은 것은 외면한다. 무협의 배경이기도 하다. 조정의 지배와는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일상을 정의한다. 조정은 믿을 수 없다. 지배층은 믿을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신들을 돕는 유협들은 믿을 수 있을까. 그 유협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것이 강도질이고 도적질이다.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이들이기도 하다.


이놈도 저놈도 다 싫다. 이 꼴도 저 꼴도 다 보기 싫다. 천지회가 이기면 천지회에 속하면 되고, 청이 이기면 청의 백성으로 살아가면 된다. 그를 위해 먼저 나서서 천지회를 쳐야 할 이유도 없고 자신을 잘대해 준 황제를 죽여야 할 이유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백성은 당장 살아남을 수 있고 앞으로도 영원할 수 있다. 누군가의 편을 드는 순간 백성은 죽는다.


김용의 의도인가는 모르겠지만 다시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래서 위소보를 아Q인가 생각하기도 했었다. 모두가 아Q의 어리석음과 비겁함을 비웃지만 그것이 바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민초가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오늘을 견디며 오늘을 이기면서 그러면서 영원히 오늘을 사는 방법인 것이다. 위소보는 그 아Q를 닮았다. 모두가 정의를 말하지만 어느것도 자신을 위한 정의는 아니었다.


친일파라고 마냥 다 증오하지는 않는다. 일제강점기가 차라리 조선보다 낫다면 그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굳이 자기 목숨 버려가며 더 힘들고 괴롭던 시절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조선의 독립이 모두에게 행복이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죽지 않았던 더 많은 사람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같은 민족인 자신들의 정부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고 있었다. 무엇을 위한 독립이었는가.


노인들은 위한 나라는 없다.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지금도 국민을 위한 나라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위소보는 도망쳤지만 지금은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강희제는 위소보를 죽일 수 있지만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는 위소보를 죽이지 못한다. 세월이 바뀌니 주제도 달라진다. 문득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