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모욕과 수모, 회사를 위한 도구가 아닌 인간으로서
정 그렇게까지 해고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정당한 사유를 먼저 적시하고 정해진 절차를 따르면 되는 것이다. 하긴 실제 그럴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다면 굳이 저런 식으로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냥 해고하면 반드시 법적으로 문제가 될 테니까 굳이 자진퇴사의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저런 수고를 하는 것이다. 대기실을 만들고 아무엇도 못하도록 압박하며 온갖 모멸과 수모를 당하게 만든다.
그래서 김과장(남궁민 분)인 것이다. 망신이든 모멸이든 수모든 결국 개인의 자존감과 비례하게 되는 것이다. 자존감이 크고 높을수록 그에 비례해서 자신이 놓인 상황에 대한 분노와 자괴감 역시 커지게 된다. 그만큼 회사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여기고 있기에, 그만큼 회사를 위해 한 점 부끄럼없이 최선을 다해왔다 여기고 있기에 지금 자신이 당하는 처우가 더 부당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양과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이유였다. 자신의 노력을 배신당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란 존재를 부정당했다. 더이상 견딜 수 없다.
더구나 TQ정도 되는 대기업이면 어지간하면 대부분의 정사원들은 유명명문대 출신들이 많다. 한 번도 실패나 좌절 같은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승승장구하여 순조롭게 명문대에 진학하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기업에도 입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놀림감이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다. 견뎌낼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어차피 대학도 야간으로 겨우 졸업하고 경력이라고 해봐야 조직폭력배 사무실 장부나 위조하던 김과장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당당히 자신의 신조가 삥땅이라 밝힐 수 있는 인간이다. 조금 사원들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한다고 그것을 못견뎌 도망칠만한 주제가 아닌 것이다. 처음부터 삥땅이나 치려 이깟 TQ에 입사한 김과장에게 대기실 발령이 큰 타격이 되지는 못한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극과 만난 것이다.
알아서 혼자서도 잘 논다. 혼자서 잘 버틴다. 물론 그럼에도 어차피 회사에서 내쫓으려 일부러 그리 무리수를 두는 것이기에 계속해서 꼬투리를 잡으며 몰아세우게 될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다. 김과장의 반격이다. 정확히 정당한 사유 없이 인간적인 모멸감을 강요하며 스스로 물러나도록 강요한 피해자들의 반란이다.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해왔지만 결국에 배신당하고 버림받았다. 김과장은 벌써부터 자기가 먼저 회사를 버리고 있었다. 대놓고 회사며 회사의 상사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원래 그렇게 살았어야 한다. 회사따위 뭐라고. 자신도 가족도 아닌 회사 따위에 자신의 삶을 모두 걸어야 하는 것일까.
전혀 의외의 부분을 건드린다. 단순한 장부조작만이 아니다. 기업에 만연한 부정과 비리들만이 아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현실의 관행에 대한 것이다. 망신주고 모욕줘서 스스로 물러나도록 만든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정당한 사유에 의한 해고가 아니다. 정당하지 않기에 그런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하필 그 대상이 김과장이 된다. 회사를 비웃고 회사의 경영자들을 욕하며 그리고 자신을 하찮게 내던진다.
양아치시절은 끝났다.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었다. 단지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럴만한 동기도 한 번 만난 적 없었다. 의인이 되고 그 관성으로 조금씩 의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양심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원래 악한 것인가, 착한 것인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직원들을 뭣취급하는 기업과 경영진에 대한 반항이다. 일개 회사원의 이름으로. 그것도 아주 불량한 회사원이 되어서. 하필 그 무렵 TQ택배에서는 구조조정이 진행되려 한다. 단지 편의에 의한 해고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려 한다.
조금씩 경리부 직원들과도 마음을 열어간다. 특히 부장과는 아예 동거까지 하게 되었다. 윤하경(남상미 분)의 집에는 오광숙(임화영 분)이 얹혀 산다. 쌈마이하게 예쁘다. 뭔가 값싸보이면서 한 편으로 귀엽다. 뜻밖의 수확이다. 천연덕스럽게 조금 모자른 듯 영악한 하류인생 오광숙을 연기한다. 배후에 대표이사 장유선(이일화 분)이 있다. 또한 번 웃으며 지나간다. 어차피 세상일이란 이렇게 우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