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김과장 - 게김의 미학, 무료아이템의 반란

까칠부 2017. 2. 17. 02:12

하긴 개돼지도 아무리 주인이라고 자기를 죽이려 하면 어떻게든 반항이라는 것을 한다. 반항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몸부림이라도 쳐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기라도 한다. 그러니 돼지 한 마리 잡을 때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궁리들을 하게 된다. 하물며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자르고 쫓아내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하나의 전쟁이었다. 쫓아내려는 사용자와 끝까지 버티려는 노동자 사이의, 특히 생계가 걸린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생존을 건 싸움일 수밖에 없었다.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가능한 모든 방법들 동원한다. 비겁하고 치졸하고 저열하고 야비한 모든 방법들을 동원한다. 싸움이란 결국 속임수이고 승리할 수 있다면 수단의 정당성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김성룡(남궁민 분) 과장이 회사에 승리를 거둔다.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다. 회사가 나가란다고 한 마디 반항도 못하고 그냥 순순히 나가준다. 조금 버티다가도 회사가 나서서 모욕을 주니 못견디고 알아서 그만두고 만다. 사원이란 그런 존재다. 회사에 의해 고용되어 회사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란 원래 그런 존재들이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그만두라면 그만둔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말 안듣는 골치덩어리다. 그 이상을 보여준다. 한 사람이 버팀으로써 회사에 더 큰 손해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한 사람을 해고하려면 그만한 정당한 사유와 성의와 수고를 보여야 한다.


김과장이 회사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회사 따위 좆밥이다. 회장따위 개새끼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 싸움이라 생각한다. 자신을 그 중심에 둔다. 망신을 당하는 것도 자신의 선택이다. 사람들이 비웃고 욕하는 것도 승리를 위한 자신의 전략이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판단한다. 내가 결정한다. 회사의 입장따위 아랑곳 않는다. 회사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


그랬기 때문이었다. 감히 회사에 덤빌 생각을 하지 못했다. 회사와 맞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겨왔었다. 회사가 먼저다. 사회의 공적 이익이 우선이다. 하지만 지금 현실에서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나를 위해 회사가 존재해야 한다. 나를 위해 이 사회가 존재해야 한다. 나를 위해 이 나라 역시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싸운다. 아예 나라 망할 각오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운다. 그런 사회에서는 개인을 두려워한다. 개인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다. 미리 지레 알아서 물러선다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공포다. 그로 인해 자기가 피해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끝까지 모든 개인들이 싸울 때 그 사회에서 개인은 두려운, 그래서 함부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사회의 변방에서 왔다. 사회의 주류들의 문법에 익숙지 않는 변방의 야만인이다. 그래서 주류사회가 만든 룰에 거침없이 도전할 수 있다. 그들이 강요한 망신과 모욕조차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약탈자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겼던 사실들을 부정하며 그에 도전하려 한다.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던 그것을 현실로 끄집어낸다. 처음 김과장이 대기실에 안마의자와 족욕기, VR을 가져왔을 때는 심지어 회계부의 과장마저 그를 보며 웃고 있었다. 모두가 아는 것이다. 단지 너무 익숙해서 그에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할 뿐.


과연 정유선(이일화 분)대표가 김과장에게 보낸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김과장의 아버지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을까. 김과장을 지금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거의 그정도가 아닐까. 그냥 주변에만 머물려 했었다. 변방의 야만인으로 남아있으려 했었다. 주류로 들어온다. 중심에서 직접 행동하려 한다. 그 벽을 허문다. 보통의 각오로는 어렵다. 그만한 충분한 계기가 필요하다.


어차피 서율(준호 분) 역시 회사를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자신의 선택이란 단지 TQ라고 하는 자본의 논리에 대한 일방적인 투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TQ에 몸담게 된 순간부터 TQ의 이익이 자신의 이익이 되었다. TQ의 논리가 자신의 논리가 되었다. TQ의 정의가 자신의 정의가 되어야 한다. 지금 서율이 느끼는 모멸감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비로소 서율로부터 벗어나 TQ로부터도 자유로운 채 그들과 맞설 준비가 끝났다. 그들과 다른 논리, 다른 정의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적을 이루겠다. 단지 장부조작만이 장기이던 김과장이 과연 TQ택배의 구조조정을 통해 어떤 다른 자신만의 장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정유선의 마지막 무기다. 감춰왔던 비장의 수단이다. 김과장이 그들의 논리를 부수고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낸다.


검찰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다. 검찰에게서도 기대할 수 없는 일들이다. 홍가은(정혜성 분)은 이미 가장 강력한 김과장의 추종자다. 정의가 부재한 사회다. 그보다는 통쾌함의 부재다.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안다. 다만 말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모든 인간은 존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오로지 홀로 김과장만이 도전한다.


본격적인 싸움이다. 서율이 주장했다. 회사에서도 달리 다른 구조조정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장 쉬운 것이 직원들을 자르는 것이다. 직원들을 잘라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그같은 관성적인 믿음에 반란을 일으킨다. 그보다 더 나은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 무엇일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싸움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