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 참을 수 없는 지루함, 지겨움, 지나치게 친절한 강요와 연출
역시나 지친다. 내내 지루했던 것은 상상이든 망상이든 해 볼 여지조차 없이 매 순간 긴장을 강요하는 듯한 지나치게 친절한 연출 때문이다. 공포란 원래 상상의 산물이다. 현실로 나타난 공포는 단지 혐오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범인일까, 도대체 무슨 의도인 것일까, 다음 희생자는 누구일까, 하지만 '하아'하는 효과음 하나로 벌써부터 모든 것을 알아버리고 만다. 무슨 재미일까?
이완이 있어야 긴장도 있다. 방심하고 있을 때 놀라움이든 공포든 더 커지는 법이다. 느긋하게 풀어져 있을 때 기습처럼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완전히 마음놓고 있을 때 전혀 뜻밖의 사실이 밝혀지며 모두를 위험으로 내몬다. 그런 재미가 없다. 내내 제작진의 의도대로 긴장을 강요당하며 끌려다니는 사이 긴장 그 자체에 익숙해져 버린다. 반복은 지루하다. 그나마 사건이라도 흥미로우면 낫다. 상상속의 사랑을 위해 테러를 저지르는 것은 모두가 관심을 가질 만한 보편적인 소재와는 거리가 멀다. 하물며 남자다. 그렇다고 대상이 된 오현호(예성 분)가 그렇게까지 드라마에서 비중이 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차라리 오현호가 미국에서 유학하며 약물을 하고 경찰의 수사선상에까지 올랐다면 더 재미있을 뻔했다. 훌륭한 반전이지 않은가. 그저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라 사람 좋고 헐렁해보이는 오현호에게 그런 어두운 그늘이 감춰져 있었다. 그와 관련해 사건이 일어나고 골든타임팀 전원이 그 사건에 휘말린다. 덕분에 그 과정에서 박은수(손은서 분)와의 관계가 진전되는 계기가 하나쯤 있어주면 더 좋다. 너무 깔끔했다. 덕분에 지나치게 심심했다. 대단한 미식가가 아닌 보편적인 다수의 대주의 입맛에 맞추려면 적당한 조미료가 필요한 법이다. 배우가 몸에 흙탕물 튀기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마냥 좋고 착한 역할만 맡을 수는 없다.
아마 검찰과 경찰의 차이인 모양이다. 그래도 드라마에서 검찰이 외부의 부정한 세력과 결탁했을 때는 제법 자세도 꼿꼿하고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간다. 하긴 그래서 영감님이다. 그에 비하면 그래도 경찰서장인데 부동산없자 모기범(이도경 분)을 대하는 배병곤(조영진 분)의 모습은 비굴하기 이를 데 없다. 법도 정의도 모두 자본에 종속된다. 인간의 욕망이 보편의 정의와 가치, 윤리에 우선한다. 경찰이 적이다. 경찰 안에 적이 있다. 그래도 용의자로 체포해서 데려왔는데 경찰서 안에서 너무 함부로 돌아다닌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모순 역시 드라마에 대한 집중을 저해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그나마 남상태(김뢰하 분)가 무진혁(장혁 분)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노리고 있다. 진짜 범인은 남상태가 아니다. 모기범은 남상태를 범인이라 여기고 그를 치우려 하고 있지만 사실 진짜 범인은 그의 아들 모태구(김진욱 분)다. 자신의 범죄를 더 완벽하게 감추기 위해서 모태구는 한 번 더 움직여야 한다. 더불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추적하고 있는 강권주(장하나 분)와 무진혁도 응징해야 한다. 심대식(백성현 분)도 장경학(이해성 분)이 의심스럽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떡밥은 충분하지면 과연 어떻게 맛있게 마무리될까.
아무튼 강점이자 약점이다. 좋을 때는 한없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다음에 대한 기대를 키운다. 하지만 안좋을 때는 오히려 그런 장면들이 지겹고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시간도 잘 가지 않는다. 뻔히 제작진이 보여주는 가이드대로 드라마에 대한 추리 아닌 추리를 하고 기대 아닌 기대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굳이 실망까지는 않는 것은 원래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예상대로 가는 것도 재미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