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반격의 시장, 바담 풍하니 바담 풍으로 돌려준다
그래서 속담에도 있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
훈장이 혀짧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바람 풍(風)자를 가르치면서 '바담 풍'이라 했는데 정작 제자가 스승이 하는대로 따라서 '바담 풍'했더니 회초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뭘 어쩌라고?
스승이라는 놈이 '바담 풍'하는데 제자가 되어 '바담 풍'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긴 그래서 제자인 것이다. 스승을 따라 '바담 풍'하면 스승 놀린다고 두들겨맞고, 그래서 스승과는 다르게 '바람 풍'이라 하면 스승을 놀리느냐고 두들겨 맞고.
위에 있는 놈들이 저 모양이다. 법을 지키라는 검찰이라는 것들이 오히려 법을 이용해 더 악랄하고 교묘하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아예 국회의원이라는 것들은 지들 좋으라고 법도 지들 마음대로 만들고 있다. 법대로 하자니 저놈들 농간에 놀아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유리한 길을 찾으려니 죄다 법을 어기는 범죄가 되고. 그런데 법을 만들지는 못해도 법을 부수거나 망가뜨리는 정도는 누구나 가능하지 않은가.
처음부터 회사란 임원들이 자신들을 위해 만든 무대라 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서율(준호 분)과 같은 법률가 공무원들이 기득권 자본가와 손잡고 만들어 놓은 구조라 할 수 있었다. 저들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하려 하면 반드시 저들의 의도에 말려들게 된다. 피할 수 없다. 충분히 감추고 비틀고 뒤집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저들에게 정직한 수단이란 그저 나 잡아먹으라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아예 회사 전체가, 혹은 사회 전체가 들고 일어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말 그대로 판을 뒤집는 것이니까.
비로소 김과장도 깨달은 것이다. 저들이 만든 무대 위에서 저들이 써준 대본으로 저들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무언가를 해봐야 결국 무대의 주인은 저들인 것이다. 자신들은 그저 저들을 위한 어릿광대에 지나지 않는다. 쓸모있으면 내버려두고 쓸모없어지면 버려 버린다. 무릎을 꿇는다고 돌아보거나 하는 일따위 없다. 저들이 만든 무대 위에서 저들과 싸우려면 무대 자체를 부숴야 한다. 대본 자체를 바꿔야 한다.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싸움을 한다.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봐야 전부 범죄이자 일탈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우화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들이다. 할 수 있어도 해서는 안되는 일들이다. 납치하고, 감금하고, 협박하고,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들의 증언을 받아낼 수 없을 테니까. 그들로부터 증거를 받아낼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카드게임에서도 거지가 왕을 이긴다. 제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최하층이나 아니면 경계 밖에서 변화의 단서는 나타난다. 때로 외국인이고, 야만인이며, 심지어 인간이 아닌 경우마저 있다. 대기업과 전혀 거리가 먼 조직폭력배 사무실의 경리과장이 대기업의 구조를 비판하며 나타난다.
내내 우울했다. 이대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아닐 것을 알면서도 그만큼 막다른 궁지에 몰려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홍가은(정혜성 분)의 말이 단서가 되었다. 자신을 위한 자신의 무대가 아니었다. 회사와 특히 서율이 만든 무대 위에서 놀아난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무대는 무엇인가. 자신의 본질은 무엇인가. 양아치에게는 양아치의 길이 있다. 자기가 지금껏 해온 가장 익숙한 일들이다.
반격이 시작된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결정적인 순간에 단서를 가지고 나타나 김과장(남궁민 분)에게 동기를 부여해준다. 검찰이 TQ그룹에 잠입시킨 홍가은이 정작 김성룡의 팬이 되어 그를 위해 협력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덕분에 경리부만 우스워졌다. 정작 경리부는 하는 일이 거의 없다. 단지 김성룡과의 러브라인을 위한 얼굴마담이었는가. 남상미(윤하경 분)의 비중이 그래서 아쉽기도 하다.
아직은 서율이 승리했다. 서율이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쉽게 물러나지는 않는다. 회사가 전부가 아니다. 회사는 단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대표란 또한 그런 회사를 위한 수단이다. 멋대로 혼자 책임감을 느끼며 자학하는 것마저 비판한다. 네가 뭐라고? 그리고 회사가 뭐라고? 함께 책임지고 싶은 그들이야 말로 각자에게 진짜 회사의 의미로 다가갈 것이다.
부모가 부끄러운데 자식이 당당할 리 없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렇다. 더구나 믿었고 존경했던 아버지의 배신은 그만큼 아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 자기가 믿어왔던 그것들은 무엇일까. 그런데 의외로 현실에서는 원기옥(조현식 분)의 아버지보다 못한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온갖 추잡하고 비열한 행동들을 자식을 위한다는 이유로 정당화한다. 그것을 자식 보는 앞에서 당당히 밝힌다. 무엇을 보고 배울까?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반격이 시작되었다. 가장 위태로운 순간 결정적인 증거가 그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서율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욕망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