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쎈여자 도봉순 - 잔혹함과 일상의 유쾌함, 그 절묘한 균형과 조화에 대해
자꾸 착각하게 된다. 이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다. 사랑하는 이야기이고 웃기는 이야기다. 분명 도봉순(박보영 분)과 안민혁(박형식 분)만 보면 그 말이 맞다. 인국두(지수 분)도, 그의 연인 조희지(설인아 분)와 도봉기(안우연 분)의 관게 또한 그런 오해를 부추긴다. 하지만 그런 한 쪽에서 끔찍한 연쇄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다. 안민혁을 상대로 정체를 감추고 협박하는 누군가가 있다.
하긴 원래 도봉순의 힘부터가 비일상적인 것이니까. 일상의 한가운데 비일상이 있다. 그래서 일상이다. 평범함 가운데 특별함이 있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은가. 지금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이나 하는 시간에도 어디선가는 끔찍한 엽기적인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웃고 떠들고 하는 사이 누군가 잔혹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안타까운 상황에 내몰렸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즐겁게 웃고 누군가는 공포에 떤다. 누군가는 편안히 수다를 떨고 누군가는 두려움에 눈물을 흘린다. 다만 문제라면 그런 대비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도봉순의 캐릭터가 너무 압도적이다. 무엇보다 도봉순을 연기하는 박보영의 매력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안민혁과 인국두가 보여주는 삼각관계만으로도 온통 정신을 다 뺐거 다른 것에 신경쓸 여지가 없다. 한 편으로 이 역시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이다. 내 일이 중요하다. 눈앞에 닥친 내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또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는 그런 이야기가 어떤 일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는 사이 도봉순이 가진 압도적인 힘과 상관없이 희생자는 늘어만 간다. 범죄자는 또다른 희생자를 찾아나선다. 경찰조차 무력하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게라도 순화시키지 않았다면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드라마로써 꽤나 곤란해질 뻔했었다. 납치에, 감금에, 살인에, 가면을 쓴 모습마저 흉칙하다. 피해여성들을 납치해 감금해 놓은 장소 역시 은밀하고 불길하다. 도봉순이 자신의 힘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한다. 도봉순의 힘을 확인한 안민혁이 도봉순을 도울 결심을 한다.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은 로맨틱 코미디를 찍는다. 중요한 건 살인, 납치, 감금이 아니다. 지나치게 냉정할 수 있지만 그래서 시청자도 마음놓을 수 있다.
도봉순과 인국두의 사이가 진전되는 만큼 안민혁과 관련한 사실들도 드러난다. 인국두의 도봉순을 향한 감정이 보다 구체화되면서 안민혁에 대한 오해 역시 바로잡는 단서들이 나온다. 주위의 증언은 한결같다. 여전히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게이인 안민혁은 그만큼 편하고 부담없이 대할 수 있다. 게이가 아닌 안민혁은 그만큼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이제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된다. 처음 기대했던 콤비의 등장이다. 인국두까지 더하면 트리오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끔찍한 사건이 이미 기다리고 있다.
범인의 정체가 드러났다. 처음 사건에서 경찰에 증언했던 목격자였다. 어떤 비밀들이 감춰져 있을 것인가. 아직 경찰은 진실의 꼬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도봉순의 외할머니가 등장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안민혁을 둘러싼 음모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평범하던 도봉동의 어느 동네처럼 평범한 누군가의 일상들이 부서져나간다. 여전히 그러나 그들은 일상을 살아간다. 사랑하면서.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