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 엄마에게서 딸에게로, 딸은 다시 엄마가 되어

까칠부 2017. 3. 18. 04:10

어쩌면 도봉순(박보영 분)의 힘이란 모성의 은유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고귀하고 강한 힘이지만 한 편으로 여성에게 그것은 천형이다. 족쇄이고 굴레다. 그로 인해 차별받고 그때문에 억압받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타인을 위해 쓰는 힘이다. 자신을 위해 써서는 안되는 힘이다. 자기의 힘인데. 자기에게 주어진 힘인데. 그리고 그 힘은 오로지 모계를 통해서만 전해진다. 딸이 엄마가 되고 외할머니가 되고 또 그 딸이 엄마가 되고 외할머니가 되는 유전 가운데 모계 3대는 하나가 된다. 하지만 정작 집안에서 딸과 엄마란 서로 원망하고 차별하는 불편한 관계일 수 있다. 알면서도 딸이니까. 알면서도 딸이기 때문에. 나같은 딸은 낳고 싶지 않다. 나같은 딸을 낳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자체가 그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였다. 이제야 겨우 전체의 그림이 그려진다. 자신이 이상화하는 여성을 위해 여성을 구속하고 강요한다. 강제로 납치해서 폭력을 휘둘러가며 길들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생겨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도대체 여성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여성이 고통받고 심지어 목숨을 잃어야 했는가. 어디선가는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서, 어디선가는 이상적인 날씬한 몸매를 얻기 위해서, 어디선가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발을 동여매가며. 여성이 배워야 할 것들과 지켜야 하는 가치와 따라야 하는 관습과 도리들에 대해서도. 그런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최소한 도봉순 정도의 힘은 가져야 한다. 그마저도 무당이 접신하여 들려준 말에 따르면 결국 칼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칼이란 남성이 가진 폭력의 수단이며 도구다. 결국 남성이 흉기의 위협으로부터 여성을 지켜낸다.


안민혁(박형식 분)이 도봉순에게 이끌리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안민혁은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 모성이 결핍되어 있다. 강한 여성에게 이끌린다.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진 여성에게 더욱 이끌린다. 남성을 지키는 여성의 힘이란 대개는 모성밖에 없다고 여겨지고 있으므로. 어머니를 바란다. 어머니이기를 기대한다. 어머니이기를 강요한다. 그래서 거추장스럽다. 타고난 모성을 운명처럼 사명처럼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때로 자신의 자유를 위해 거부하기도 한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혹은 친구를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지만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다.


역설이다. 인국두(지수 분)는 조직폭력배로부터 도봉순을 지키기 위해 달려든 것이었다. 그러나 인국두의 폭력으로부터 낯선 사람을 지키기 위해 도봉순은 인국두에게 감춰왔던 자신의 힘을 드러낸다. 그렇게 구한 것이 정작 자신을 해치려던 조직폭력배였다. 그 모습을 또한 안민혁이 멀리서 지켜본다. 미묘하달까? 그래서 과연 인국두와 안민혁, 도봉순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솔직히 인국두는 재미없다. 연기가 답답하게 먹는 연기다. 시원하게 드러내는 것이 없다. 자기를 드러내지 못한다.


외할머니와 엄마와 딸이 만난다. 할머니가 아니다. 어느새 모두가 잊어버린 진짜 모계다. 엄마에게서 딸로. 딸에게서 다시 딸로. 그 힘처럼. 그러면서도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엄마와 딸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세상은 여성에게 너무 위험하다. 어떤 의미에서든. 의도한 것일까?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