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 존 롱 실버,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른이란
'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신비의 섬으로
바람 타고 물결 넘어 바다로 가자
지금도 그곳은 아무도 모르는
신비한 낮과 밤이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우리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찬
미지의 세계로 힘차게 나간다
별셋이 노래했다. 언제부터인가 만화영화 주제가 하면 김국환을 떠올리게 되었지만 원래는 별셋이었다. 군가도 별셋이었다. 심지어 동요도 별셋이었다. 그래서 정작 가수 별셋의 히트곡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 있기는 한 것 같은데 도무지 뭘 불렀는지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데자키 오사무가 연출한 만화영화 '보물섬'의 주제는 한 가지였다. 롱 존 실버. 캡틴 실버. 해적 실버. 아무튼 그냥 실버. 주인공 짐이 아직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만화영화에서처럼 대단한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영웅이 아닌 그냥 평범한 아이였다. 그래서 그 빈 자리를 어느 순간부터 등장한 어른 실버가 채워준다. 사실상 짐의 아버지로서.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냥 쓰레기에 지나지 않았다. 해적이었다. 바다에서 다른 배를 공격하여 재물을 빼앗고 사람을 죽이거나 혹은 납치해서 팔아치우는 인간 이하의 범죄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당시 실버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고 보물을 독차지하기 위해 주인공 일행을 공격하며 음모를 꾸미는 동안에도 정작 만화영화를 보던 많은 아이들은 실버의 편에서 실버를 응원하고 있었다. 많은 만화와 영화, 드라마 들에서 관객들이 주인공에 자신을 이입하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모습이었다.
아니 정확히 당시 아이들 역시 주인공인 짐에게 이입하고 있던 것은 맞았다. 문제는 주인공인 짐 역시 시청자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실버라는 인물에게 - 어른에게 이끌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뱃사람이었던 아버지를 어려서 잃고 혼자가 된 엄마와 함께 여관을 운영하고 있던 더구나 어린 소년이던 짐에게 뱃사람이며 남자였던 어른 실버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누구보다 크고 강했고 유쾌했으며 진지하게 짐의 말을 들어주고 자기가 아는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한 마디로 술에, 담배에, 노름에, 심지어 아이들에게는 아직 이른 아주 안좋은 것들만 골라서 가르쳐주는데 그러면서 늘 가까이서 함께 들어주고 이야기해주는 어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가르쳐주는 것들이라고는 죄다 못되고 나쁜 것들이고 자신도 구제못할 악당이지만 자기에게만큼은 진심으로 대해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바라는 어른이란 돈 많이 잘버는 어른이 아니다. 대단히 사회적 지위도 높고 권력까지 가지고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아래에 둘 수 있는 엄청난 신분의 어른도 아니다. 아직 아이들에게 문밖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동네만 벗어나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짐이 보물을 찾겠다고 떠났던 바다나 무작정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떠도는 옆동네나 사실 아이들에게 난이도는 거기서 거기다. 요즘 아이들은 물론 예전 아이들에 비해 훨씬 일찍 배우고 따라서 일찍 똑똑해진다. 그래도 근본은 다르지 않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아이들의 세계에서 항상 곁에 있으면서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의 존재인 것이다. 항상 자신들을 지켜주고 자신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주며 자신들과 함께 해 줄 믿음직한 누군가인 것이다.
아이들은 물론 상당수 어른들까지 악당인 실버에게 빠져들었던 이유였다. 어찌되었거나 실버는 어린 짐과 눈을 마주하고 그와 같은 것을 보려했던 단 한 사람의 어른이었다. 권위적이지도 않았고 도망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짐을 억지로 밀어내려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라기보다는 친구였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친구였다. 그의 등을 보면서 그를 닮으려 했었고 그의 모든 것을 따라하면서 그와 같은 어른이 되고자 했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자신들을 속이기 위한 기만이고 가식인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 자신이 진심이었기에 그 소중한 순간들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실버가 자신을 배신했어도 자신이 자신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실버는 그래서 자신에게 여전히 영웅이어야 했다.
사실 원작과 가장 다른 부분이었다. 원작에서는 이렇게까지 멋진 남자가 아니었다. 물론 매력적이기는 했었다. 원작에서도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캐릭터였고 이후 만들어진 해적이 등장하는 많은 창작물에서 해적을 묘사하는 전형이 되어 있기도 했었따. 초반 짐에게 친절하게 대하던 강인하면서 유쾌한 모습과 한 편으로 후반에 보물을 독차지하기 위해 짐일행을 공격할 때 보였던 교활하고 잔인하며 비열한 모습들까지 해적을 묘사하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이 이 실버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해적에 대한 막연한 동경같은 것도 그로 인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를테면 마츠모토 레이지의 '캡틴 하록'이라든가, 아직도 연재중인 오다 에이이치의 '원피스'와 같은. 헐리우드에서도 '캐리비안의 해적'과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역시 해적이고 악당이다 보니 원작의 짐은 실버가 도망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와 다시 보지 않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을 정도였다. 한 마디로 십 수 년 뒤에도 다시 실버를 만나고 반가워하는 짐의 모습은 감독 데자키 오사무의 창작이었던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솔직히 지금 본다면 어이없이 울어버릴 것 같다. 그토록 강인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실버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늙고 퇴락한 모습이 되어 어른이 된 짐의 앞에 나타난다. 짐이 어른이 되어가는 사이 실버는 그동안 해적질로 모은 돈마저 모두 잃고 어느 항구의 거리에서 팔씨름으로 술이나 구걸해 먹는 비루한 처지로 전락해 있었다. 늙어 더이상 날지 못하고 일어서지도 못하는 앵무새 플린트를 보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것은 실버 자신이었다. 더이상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늙어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비참한 자신의 처지였다. 그것을 존이 뒤에서 지켜본다. 마치 어른이 되어 더이상 자기보다 크지도, 강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은 어른의 작아진 모습을 보게 된 여느 아이들처럼.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만큼 어른들은 늙어가고 약해지고 그리고 어느새 사라져간다.
세상이 좁다고 바다를 누비던 해적이었다. 인간의 법과 규범을 비웃으며 내키는대로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던 악당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힘이 떨어지자 좁은 항구의 골목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모두에게 비웃음을 들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할 뿐이었다. 노병이 죽지 않는 것은 죽기 전에 먼저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죽든 이제 더이상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나마 만화영화에서는 짐이 우연히 그를 보았기에 실버란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짐마저 그를 보지 않았다면 그는 모두에게 잊혀진 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쓸쓸히 세상에서 사라져갔을 것이다. 어린시절 너무나 크고 대단하게만 보였던 하나의 세계가 사라져가는 순간이었다. 마치 드라마의 주제와도 같다. 수미일관하며 짐과 실버의 사이를 이어준다. 시청자인 아이들과 실버를 이어준다. 언젠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보게 될 어른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기에 아이들은 아직 너무 어리다. 어른이 되어 본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차마 다시 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들어지기는 꽤 오래전에 만들어졌다. 방영된 것은 아마 1980년, 그리고 몇 년 뒤에 한 번 더 방영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방영되었던가? 데자키 오사무만의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든 말 그대로 명작이다. 하필 이 만화영화를 전후해서 역시나 데자키 오사무가 연출했던 '집없는 소년'도 보았어서. 서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인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감동을 극대화한 데자키 오사무의 연출을 좋아했다. 하모니 기법이라 하던가. 동화에 있어서도 터치를 강하게 써서 역동성을 더해준다. 주제가는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가 가운데 하나다. 만화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봤어서 정작 원작은 재미없게 보았던 경우. 만화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나중에 보았던 탓에 보는 내내 실망이 컸었다. 특히 실버가. 내가 아는 실버는 이렇지 않았다.
어쨌거나 역시나 떠오르는 것은 실버의 이야기 뿐이다. 하게 되는 것도 결국 실버에 대한 얘기 뿐이다. 보물은 그저 거든다. 짐은 단지 실버와 자신을 잇는 매개였을 뿐이다. 실버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해적이 아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크고 강하고 유쾌한 남자가. 늙어빠진 플린트가 되어 버렸지만. 아무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