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너무나 쉬운 정의, 그러나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환상
악이 악인 이유는 그것이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정상인데 악이라 부르지 않는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악이다. 하지만 전장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일상이다. 전장에서 수천수만의 사람을 죽였다고 그를 악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악인들이 자신의 행위를 감추고 들키지 않기 위해 발악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는 순간 책임을 져야만 할 테니까.
이렇게나 쉬운 것이었다. 증거만 있다면.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증거만 확보할 수 있으면. 하지만 원래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곳이 검찰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검찰이 아무일도 하니 않는데 어떻게 사실을 찾아내고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당장 지금껏 박현도(박영규 분)를 처벌하지 못하고 있던 것도 검사시절 서율(준호 분)이 한동훈(정문성 분)의 수사를 훼방놓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여러 증거들을 김성룡(남궁민 분)과 경리부 직원들이 직접 찾아내서 검찰에 넘겼음에도 검찰이 그를 거부함으로써 도리어 서율과 경리부 직원들만 곤란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비정상이어야 할 악이 여전히 남아서 행세하고 있다는 자체가 사회가 이미 비정상으로 돌아서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슈가 되고 있는 대통령만 하더라도 그렇다. 대통령과 관련한 여러 이슈들이 벌써 2007년에도 단편적이나마 세상에 알려진 바 있었다. 임기중에도 야당국회의원들에 대해 대통령과 관련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이슈화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는가. 심지어 대통령의 최측근까지 연루된 비리의혹에 대해서마저 유권자는 표로써 야당을 심판하며 면죄부를 주고 있었다. 만일 성완종 리스트가 크게 이슈화되었을 때 유권자들이 그 잘못을 표로써 심판했었더라면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폭주할 수 있었겠는가. 단순히 검찰만을 탓하고 말 문제가 아닌 이유다. 정치권만을 탓할 수도 없다. 이 지경까지 오고서야 비로소 배신감을 느끼고 등돌린 더 많은 유권자들 - 국민들의 책임은 없는 것인가.
아들이다. 피를 나눈 가족이다. 하지만 박명석(동하 분)은 그런 아버지의 잘못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자기에게는 아버지지만 그로 인해 고통받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자기 가족이 대주주로 있는 기업에서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고 있었다. 그것이 양심이다. 인간이 가진 가장 고귀한 본성이다. 그랬더라면. 그렇게 누군가의 큰 잘못에 대해 자신들이 먼저 분노하고 행동에 나섰더라면.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죄는 죄고 악은 악이라고. 하긴 그렇게 말처럼 쉬웠다면 세상이 이렇게까지 엉망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의 잘못인가. 모든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가족이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이었다. 마침내 그 대단하다는 배후의 실세마저 약점이 잡혀 아무 힘도 쓰지 못한다.
원래 이런 것이 검찰의 힘이었어야 했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다. 검찰이 수사했으니 사실일 것이다. 검찰이 수사해서 발표한 내용이니 진실일 것이다. 하지만 더이상 그렇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검찰도, 정부도, 정치인들도 누구도 믿지 못한다. 그래서 현실이 각박하다. 아무도 믿지 않고 오로지 자기 혼자 살려 발버둥친다. 야생의 정글에 떨어진 사람들마냥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을 배신하고 상처주고 살아남은 오늘을 다행스러워하며 다시 내일을 살아간다. 김성룡이 부임하기 전 경리부도 다르지 않았었다. 나만 살면. 나만 괜찮으면. 그러니 덴마크는 여기와 조금이라도 다르지 않을까.
너무 쉬워서 허탈하다. 너무 허술해서 차라리 현실감이 없다. 그래서 드라마다. 드라마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현실에 없는 정의도, 진실도, 희망도 드라마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존재할 수 있다. 서율이 김성룡과 함께 한다. 마치 오랜 형제같다. 친구같다. 김성룡도 많이 외로웠구나. 그러고 보면 비슷하다. 현실이 그들을 먼저 배신했고 그리고 다시 그들은 현재를 믿으려 한다. 마지막 순간이다. 마지막 회다. 벅차오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