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터널 - 간결하면서 건조한 수사와 압박감마저 느끼는 긴장의 조화

까칠부 2017. 4. 10. 04:18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보다 수사과정이 드라이하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할 수 있는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다. 간결하면서 건조하다. 당연하게 해결될 사건들을 풀어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정해진 답을 쫓는다기보다 당연하게 가야 할 길을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는 것에 더 가깝다. 나름대로 개성도 강하고 경험과 실력도 남다른 뛰어난 경찰들이기는 하지만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경찰 그 자체다.


수사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아무도 생각지 못하는 탁월한 추리력같은 특별한 개인기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 박광호(최진혁 분)도 그의 동료 김선재(윤현민 분)도 경찰이라는 조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주인공인 만큼 남다르게 뛰어난 부분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것 역시 결국 경찰이라는 조직을 이루는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를 더하고 또 하나를 더하고 그러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곳에서 새로운 단서들이 더해진다. 그래서 심심하고 지루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압박감마저 느낄 정도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연출의 힘이다. 아무 단서도 주지 않고 드라마속 경찰들과 같은 눈높이로 사건을 쫓을 수 있도록 방치한다.


과연 카드회사까지 찾아와 자해소동을 벌인 윤영주는 자신의 말처럼 일방적으로 신분을 도용당한 피해자인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경찰들이 판단한대로 단지 카드빚에 쫓긴 끝에 모면하려 거짓말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수사드라마이기에 새로운 사건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생긴다. 윤영주는 분명 피해자일 것이고 배후에는 어떤 정교하고 치밀한 트릭이 감춰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윤영주에 대해 수사하기 시작하면서 신분을 도용했다는 용의자에 대한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경찰들과 함께 당황하게 된다. 하나의 사건 속에 반전에 또 다른 반전을 숨겨 놓는 것은 요즘에 와서 너무나 당연한 추세이기도 한 것이다. 누구의 말처럼 역으로 가는 것일까? 심지어 윤영주가 자신의 신분을 도용한 범인을 봤다며 제보한 조동익이 시체로 발견되며 의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사건이 일어난 당일 윤영주의 확실한 행적을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단서라 할 만한 것이 전혀라 해도 좋을 정도로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섣부르게 오판할 가능성마저 원천적으로 차단당한 상태였다. 일직선으로 사건을 향해 다가간다. 비슷한 또다른 사건을 찾고, 다시 더 많은 사건들을 찾아내고, 그리고 그 사건들 사이에 공통점을 찾아낸다. 범인이 같고 수법까지 비슷하다면 어딘가 각각의 피해자들과 범인을 잇는 공통된 접점이 있을 것이다. 그를 통해 범인은 피해자과 접촉하고 피해자의 신상에 대해 알아내어 신분까지 도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재이(이유영 분)가 심리학자다운 직관으로 그 접점이 될만한 장소를 일상속에서 찾아낸다. 듣고 나면 너무 당연하고 그래서 새로울 것이 없다. 비로소 그제서야 시청자 역시 드라마를 통해 몇 가지 단서가 주어졌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만일 진짜 피해자들이 피해를 당하기 시작할 무렵 모두 누군가와 사귀고 있었다면 의외로 가능성 있는 장소 또한 좁혀진다. 그냥 노가다였다. 모여서 일일이 대조해가며 피해자들 사이에 단 하나 접점을 찾아낸다. 그 틈을 노려 신재이에게 작업을 거는 김선재의 모습은 나름 놀라운 반전이며 통렬한 기습이었다. 작업은 이렇게 거는 것이다.


도대체 왜 범인은 그런 일들을 저지른 것일까? 굳이 남의 신분까지 훔쳐내어 다른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고 인생마저 망치고 만 것일까? 이유 역시 납득이 간다. 결국 질투였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이었고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단순한 욕망으로 변질된다. 남의 이름으로 더 많은 돈을 아무 부담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자기 것이 아닌 것들로 자신을 치장해가며 만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진실이 드러나며 거짓된 자신은 흔들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경찰들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단지 자신이 지금 누리는 행복을 이유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원한을 품고 행동에 옮기려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괴물이다. 나도 남같아야 하고 남들보다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획일적인, 남을 의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사회의 비져나온 종기와 같은 것이다.


역시 사건의 이유는 등장인물들과 관계가 있었다. 정작 드라마의 중심은 과거에서 온 박광호가 다시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일상적인 사건들에 지나지 않는다. 지나치게 사건을 밀착해서 보여주다 보면 정작 중심이 흩어지기 십상이다. 박광호가 미래로 오고, 김선재와 신재이를 만나고,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한 끝에 자신의 진실과도 마주하게 된다. 이름만 같을 뿐 자신은 박광호가 아니었다. 2017년 현재에는 존재하지 먼 과거속 존재였다. 뜻하지 않게 여러 우연들이 겹치며 또다른 박광호의 이름을 빌어 살고 있을 뿐이다. 자기의 존재가 가짜임을 범인에게 들키고 만다. 자신은 박광호가 아니며 경장도 아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원래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였다. 그리고 그것을 옆에서 김선재도 듣게 된다.


의심하기 시작한다. 같은 시각 박광호는 원래의 또다른 박광호의 단서를 찾아 과거 후배였던 팀장 장성식(조희봉 분)과 함께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필 김선재가 의심하기 시작한 그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불가능한 확신을 가지게 만든다. 박광호보다 먼저 실종된 박광호의 시체를 찾아냈다. 지금의 박광호는 박광호가 아니다. 그동안 자신이 스치듯 들은 이야기대로라면 30년 전에서 온 사람이다. 팀장이 박광호에게 선배님이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어떻게 진실은 밝혀지고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것인가.


김선재의 작업은 뜬금없지만 한 편으로 김선재의 캐릭터와 어울린다. 솔직하지 못하게 솔직하다. 진실하지 못하게 진실하다. 감추는데 익숙하기에 너무나 정직하게 감춰서 드러내고 만다. 직구는 박광호 혼자다. 빛 속에 숨는 사람도 있다. 부검의 목진우(김민상 분)의 독백이 흥미롭다. 살인범을 쫓는 동안 살인자와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가장 참혹한 죽음을 가까이서 자주 볼 수 있는 직업이다. 비중이 너무 아깝다. 다음주다.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