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느긋해지는 이유...

까칠부 2017. 4. 14. 07:10

사실 이건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환경이면 - 더구나 야외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당연히 비오는 날이면 밖에 나가서 일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할 테니까.


어려서 우리집이 그랬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모두 밖에서 일하셨는데, 그래서 일을 나갈 수 없는 비오는 날이면 가족이 모두 이불깔고 낮부터 잠을 잤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집에 TV도 없었기에 사실상 비오고 날까지 어둑하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보다 한참 더 오래된 옛날에도 사정은 같았을 것이다. 인간은 몸에 털이 없어 체온을 보존하는데 매우 불리하다. 비를 맞거나 하면 급격히 체온을 빼앗기기 때문에 비오는 날이면 활동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마른 곳을 찾아서 옹기종기 모여앉은 다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었을까? 그래서 인간의 유전자에는 빗소리는 휴식과 같은 뜻으로 입력되었을 것이다.


꼬맹이랑 쭈그리가 처음 내게 왔을 때 슬레이트 지붕으로 앞마당이 꾸며진 좁은 집에 살았었다. 방문도 항상 열고 비가 오면 슬레이트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었는데, 채광까지 좋지 않아서 딱 어렸을 적 살던 집을 떠올리게 했다. 아, 또 이야기가 그놈들에게로 향하는가?


토독토독토독... 쏴아아아아아아...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다. 진저리치듯 쏟아지는 가운데 불규칙하게 들리는 둔한 타격음이 있다. 사실 이게 진짜인데.


지금 사는 곳에서야 비가 오든 말든. 그래도 부엌에서 문밖에 비오는 소리 듣고 있으면 비오는가보다 싶다. 그리고 문득 나른해지는 것이 잠이 오기 시작한다. 빗소리는 잠의 시작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 여기까지 왔더라. 비오는 날을 기다린다. 미친 듯이 쏟아니며 모든 것과 소리들을 지워버릴 수 있는 날을. 그리고 아주 깊이 잠들 수 있기를. 비가 왔었는가?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