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터널 - 복잡하기 얽히는 시간의 고리, 박광호 다시 시간을 넘어오다

까칠부 2017. 5. 14. 03:39

사실 보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과연 지금이 과거의 미래인가 과거가 지금의 과거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신재이(이유영 분)의 강의처럼 현재는 과거의 총합이다. 과거가 바뀌면 현재도 바뀐다. 과거의 사건들이 달라지면 지금의 자신 역시 달라진다. 박광호(최진혁 분)가 과거로 돌아가고 그래서 친엄마 신연숙(이시아 분)가 혼자가 아니게 된다면 그래도 신재이는 박연호가 아닌 신재이로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박광호가 과거로 돌아갔음에도 과거의 미래여야 할 현재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목진우(김민상 분)는 잡히지 않은 채 의대교수로 있었고 신재이 역시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고 영국으로 입양갔던 신재이로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한 편으로 다른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박광호가 터널에서 과거의 목진우를 쫓다가 디시 미래인 현재로 넘어오게 되었다. 박광호가 목진우를 잡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을 애써 말리던 아내 신연숙의 모습이 무언가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만일 시간을 넘어온 상태에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과거의 시간은 지금 알고 있는 그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주 같지는 않다.


박광호가 태어나기도 전에 실종된 자기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미묘하지만 선명하게 변화하게는 신재이의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불신과 불안과 놀라움과 그리움과 실망, 그리고 안도까지. 그 순간 드라마에는 엄마 신연숙과 딸 신재이만이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도저히 일반적인 상식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음에도 진지하게 듣고 순수하게 믿어주는 신연숙의 눈망울이 마치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냥 사랑하고 있구나. 그저 믿고 있구나. 그만큼 남편 박광호가 갑자기 사라지고 혼자가 되어 견뎌야 했던 시간들이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립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기적처럼 겨우 다시 돌아온 남편이 또다시 어딘가로 사라졌을 때 아내 신역숙이 느껴야 했을 감정을 떠올려보게 된다. 그래도 미래에 자신이 낳은 딸이 아빠를 만난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나마라도 희망으로 여기고 살아갈 수 있을까?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족의 이야기는 감동이지만 한 편으로 과거와 미래를 교차하는 사건은 거대한 미궁이 되어 버린다. 미래에서도 과거에서도 연쇄살인범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미래에서 찾은 단서를 과거로 가져가고, 결국 다시 미래로 오면서 과거에 놓아두고 온다. 여기서 글의 첫머리에 던진 물임의 답을 찾을 수 있다. 과거로 가져갔던 만년필을 신연숙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 신연숙이 가지고 있던 만년필이 다시 미래인 현재로 전해질 것인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박광호가 사라지고 아내 신연숙과 딸 신재이가 겪어야 했던 고단하고 불행한 과거의 사건들 역시 바뀌지 않고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결국 박광호는 다시 신연숙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 딜레마를 작가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살인범 목진우에게는 정호영과 달리 동기가 있었다. 수많은 여성을 살해했지만 모두 동기가 있어 저지른 살인이었다. 과거 연쇄살인이 일어나던 무렵 목진우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2년 사이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피해자의 발뒤꿈치에 점을 찍었던 자신의 만년필을 찾지 못하자 패닉에 빠진 듯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었다. 어쩌면 과거로 돌아갔을 때 목진우의 동기와 만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목진우와 마주치고 서로 쫓고 쫓기는 사이 다시 터널을 지나 미래로 돌아왔다. 현재에서도 김선재(윤현민 분)가 박광호가 남긴 단서를 바탕으로 목진우의 정체를 추적하고 있었다. 의도인 듯 무의식인 듯 목진우가 남긴 단서가 그가 살인범임을 의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런 목진우가 김선재와 신재이의 대화를 통해 신재이가 박광호의 딸인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것이 박광호가 미래오 오게 된 이유가 아닐까.


터널을 통해 시간을 넘어오고 가장 먼저 만난 것이 딸 신재이였다. 연쇄살인범 정호영으로부터 신재이를 구하기 전 이미 박광호는 신재이의 집에서 난 불을 끄고 있었다. 그리고 목진우가 신재이의 정체를 알고 그녀를 노리는 듯 보이는 순간 다시 박광호는 미래로 시간을 건너뛰어 온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더 복잡하게 얽힌 사건의 진실을 쫓아서. 과거에서든 현재에서든 연쇄살인범 목진우는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중심에는 어쩌면 딸 신재이가 있었는지 모른다.


남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신연숙의 삶이 묻어나면서도 한없이 순수한 눈빛과 신재이의 많은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미묘하면서 복잡한 표정이 더욱 드라마에 눈을 고정하게 만든다. 캐릭터 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배우들도 매력적이다. 아, 이런 감정이구나. 이런 이야기였구나. 그래도 내일이다. 다행으로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