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터널 - 아쉬운 뱀발들, 기억해주어 고맙습니다!

까칠부 2017. 5. 22. 04:57

사실 많이 지루했다. 목진우(김민상 분)가 서재이(이유영 분)를 죽이기 위해 나타날 것을 예상하고 미리 함정을 파고 잠복해 있던 장면은 신선했었다. 하긴 아니라면 벌써 목진우가 서재이를 죽이려 나타났는데 그 짧은 시간에 서재이의 집까지 달려가서 막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바로 옆에 숨어 있어야 한다.


그렇게 결국 목진우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그러나 목진우로부터 자백을 받아내야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지루한 머리싸움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하면 목진우로부터 자백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 전에 이미 형사 송민하(강기영 분)의 입을 통해 그동안 확보한 증거들만으로도 기소는 물론 유죄판결까지 전혀 문제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었다. 단지 증거도 부족하교 자료도 남아 있지 않은 30년 전 사건을 위해서 목진우의 자백이 필요하다. 그래서 목진우의 범행일기라는 작위적인 설정까지 등장한다.


박광호(최진혁 분)의 말처럼 사실 목진우가 왜, 무슨 이유로 사람을 죽였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떤 동기와 목적으로 그토록 많은 사람을 살해했는가도 관음적 호기심을 위해서나 필요한 것이었다. 결국 자신의 어머니가 살해된 이유를 듣고 김선재(윤현민 분)도 분노하다가 어이없어 허탈해하고 만다. 고작 버스에서 다른 남자와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라니. 그런 것까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가 일일이 듣고 알아야 하는 것인가. 그나마도 그의 자백을 듣기까지 그다지 재미있다고 할 수 없는 대사들만 넘쳐나고 있었다. 긴장도 무엇도 없이 클로즈업된 인물들의 대사만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제는 범인도 잡혔고 드라마도 끝났구나.


하필 5월에 방영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하지만 화제는 되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작년 지금 무렵 강남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여혐이 원인이었는가. 분명 목진우도 미친 놈이었다. 어떻게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데 제정신이 아닌 목진우가 굳이 여성을 타겟으로 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중요하다. 여성이 아니었을 때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노인을 대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한 마디로 자기가 더럽다고 정의했을 때 그것을 반박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대상들을 상대로 한 범죄였다.


혐오란 다른 것이 아니다. 대상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대상을 일반화하는 것이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 흑인은 이래야 한다. 올바른 동성애자라면 이렇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진정한 무슬림이라면 이와 같은 반응을 보여야 한다. 사회의 주류에 속한다면 단호히 거부할 수 있다. 그래도 어찌할 수 없는 사회적 지위와 힘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미국사회에서 흑인을 상대로 차별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되면 바로 제제가 가해지게 된다. 아니 그 전에 이미 흑인들 자신이 그같은 말과 행동을 한 상대를 응징하려 할 것이다. 그럴 수 없었던 시절에는 그저 당하고 있어야만 했다. 말하면 들어야 하고 때리면 맞아야 하고 하지 말라면 말아야 했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잘못이다. 여성에게 문제가 있다.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여성과 거리가 있다.


어머니에 대한 분노였다. 어머니에 대한 갈망 만큼이나 커진 실망과 분노가 자기 안에 이상적인 어머니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랬으면. 아니면 저랬더라면. 그랬더라면 지금과 같은 일들은 없었을 텐데. 지금처럼 자신이 비참해지고 힘들어질 일 또한 없었을 텐데. 스스로 히어로가 된다. 악을 물리쳐야 한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을 여성으로 삼는다. 그래도 되니까.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자신의 머릿속에 그것은 이미 논리적으로 정당화된다. 여성의 잘못이다. 이상에서 벗어난 여성의 잘못이다. 그 이유들이 터무니없다. 그 배후에 있는 여성에 대한 인식이 그러나 가볍지만은 않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살인을 저질렀다. 그런데 스스로 그 논리를 납득하고 있었다. 그래도 된다. 그래도 전혀 아무 문제도 없다. 대학생이다. 나름대로 정규교육도 끝까지 마친 경우다. 그냥 미친 놈이었다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원인은 목진우 자신의 살인에 대한 충동과 갈구였겠지만 그런 궤변을 자신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받아들이는 구조가 궁금하다. 마지막까지 목진우는 자기가 부당한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김선재의 어머니를 살해한 이유를 말하면서도 오히려 연민과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머니의 진실을 알게 되어 안타깝다.


그 다음은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이다. 회식까지 마치고 딸 서재이와 밥까지 같이 먹고 아주 느리게 감동이 다 휘발될 동안 이별은 진행된다. 물론 그 전에 연쇄살인의 피해자들을 찾아가 범인을 잡았다고 직접 알려주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잊지 않았었다. 마지막까지 범인을 쫓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오해지만 그래도 유족들은 작으나마 위로받을 수 있었다. 피해자들이 잊히지 않았고 이렇게 진실까지 밝혀지게 되었다.구원받은 기분이다. 경찰의 일은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닌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낭만시대의 이야기다.


과연 박광호가 30년 전 과거로 돌아가서 현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당장 박광호가 주인공이니까. 그러나 그렇다면 박광호와의 인연으로 같은 이름을 쓰게 된 30년 뒤 또다른 박광호와의 이름 역시 달리 불렸어야 했다. 30년 뒤에 진범을 잡았기 때문인지 30년 전 목진우를 체포해서 처벌받게 한 정황도 보이지 않는다. 30년 전에 박광호가 목진우를 체포했다면 더이상 목진우로 인한, 어쩌먼 정호영에 의한 연쇄살인의 피해자도 생겨나지 않을 수 있다. 진짜 박광호는 30년 전 목진우의 체포를 포기했던 것인가.


차라리 공중파 드라마같다. 메마르다 싶을 정도로 간결하게 드라마의 장르와 취지에 충실하던 다른 케이블드라마와는 달리 인간의 감정과 신파적인 관계에 더 집중해서 드러내고 있었다. 재미가 없었다. 말 그대로 다 끝났구나. 언제나 헤어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든. 아니면 상대든. 결국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