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 - 사계

까칠부 2017. 5. 28. 03:11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고운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구름 뭉게구름 탐스러운 아기구름

짧은 샤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저 하늘엔 별들이 밝게 빛나고


찬바람 소슬바람 산넘어 부는 바람

간밤에 편지 한 장 적어 실어 보내고

낙엽은 떨어져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눈이 온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또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에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고운 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아주 오래전이다. 대학시절 어느 여성노동자의 수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사정으로 인해 바로 취직을 해야만 했었다고 했다. 또래의 아이들이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학창생활을 즐기며 내일의 꿈을 그리고 있을 사이 그 노동자는 빛조차 거의 들지 않는 반지하 공장에서 창틈으로 비치는 좁은 하늘에만 의지하여 먼지를 마시며 일하고 있었노라고. 워낙 어려서부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볕도 쬐지 못한 채 오랜시간 일만 하다 보니 키는 자라지 않고 어깨는 굽었고 얼굴마저 창백하더라 쓰고 있었다.


사실 매우 흥겨운 노래다. 따라부르다 보면 절로 고개를 까딱이고 어깨를 들썩이게 된다. 뭔가 굉장히 즐겁고 행복한 느낌마저 준다. 세상은 이리도 기쁘고 즐겁고 아름답고 희망찬 일들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다. 노래가 흥겨운 것은. 멜로디가 이토록 절로 어깨춤이 나도록 흥겨운 것은. 그런 세상과 전혀 상관없이 좁은 공장에서 그저 미싱만 돌리며 저물어가는 청춘이 있음을 들려주기 위해서다. 학교에서 왁자하게 친구들과 떠들며 노는 동안에도, 이성과 떨리고 설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그 동안에도, 내일에 대한 기대와 불안으로 고민하고 방황하는 그 순간에조차, 아니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여 정의를 부르짖고 있을 바로 그 순간에도 전혀 상관없이 미싱앞에 앉아 창백하게 바래져가는 이들이 있었다. 아주 작고 아주 여리고 아직은 어렸던 대부분은 소녀들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무심하게도 여전히 밝고 힘차고 흥겹고 즐겁기만 하다.


그저 먼 남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지금 당장도 자신이 그저 덥지 말고 춥지 말라고 옷장을 뒤져 계절옷을 찾아입는 것으로 겨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있을 뿐이다. 어제가 무슨 날이고 오늘은 어떤 날이고 내일은 어디서 어떤 일들이 예정되어 있는지. 잠자는 시간조차 부족하다.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마음껏 쉬고 싶지만 눈치가 보여 차마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대부분 많은 직장인들이 경험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하늘은 이리 맑은데. 바람은 이리도 시원한데. 눈이 오고 비가 오는데. 꽃이 피고 단풍이 흐드러졌는데. 혹시라도 그나마 일자리조차 잃을까봐 아무리 아파도 아픈 기색조차 화장으로 가린 채로. 과연 인간은 일하기 위해 사는가. 아니면 살기 위해서 일하는가. 거북이의 '사계'가 그다지 거슬리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사람이 일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삶을 즐기기 위한 것일 텐데 정작 아무리 일을 해도 그런 여유따윈 주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그나마도 먹는 거며 쉬는 거며 하다못해 화장실 가는 것마저 눈치보고 때로 매까지 맞아야 했던 이들이 있었으니.


많은 대학생들이 보장된 내일을 포기하고 공장으로 공장으로 달려가야 했던 이유였다. 책만 들이파던 범생이들이 손에 물집이 잡혀가며 용접기술을 배우고 미싱기술을 배웠다. 공장노동자들과 똑같이 열악한 임금과 대우를 감수하며 고된 노동에 자신을 내던졌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당국에 체포되어 학교에서 제적되고 자신은 전과자 신세가 되었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때 얻은 고문으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드라마 '송곳'으로 인해 더이상 낯설지 않다. 순수했으니까. 자기가 배우고 익힌 지식과 기술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만큼 세상의 잘못된 부분을 그냥 보고 지나치지 못했었다. 때로 목숨까지 걸어가며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많은 힘없는 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자신을 내던져야 했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 그 젊은 순수와 열정에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습게도 당시 그 최선봉에 섰던, 당국에서 가장 악질이라 여기던 인물이 지금 보수정당에서도 가장 꼴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김문수였다. 노동운동의 전설이었다. 마찬가지로 또 한 사람 여성으로서 전설이었던 이가 정의당의 대표 심상정이었다. 노회찬 역시 서울대 출신으로 용접기술을 배워 역시나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 아내도 같은 투쟁의 현장에서 만났을 것이다. 어디 한 둘일까. 때로 너무 달라진 모습에 욕을 하고 싶다가도 끝내 머뭇거리고 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그만큼 살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살지 못했을 테니까. 자기의 목숨과 자신의 미래와 어쩌면 가족들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마저도 저버려가며 자기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싸워야 했던 이들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가끔은 그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이들이 있어 씁쓸함을 더하기도 한다.


내가 어린시절 두번째로 들었던 이른바 민중가요였었다. 처음은 역시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른 '솔아솔아푸르른솔아'였다. 그리고 아마 같은 앨범에서 이 노래를 들었을 것이다. 뭣도 모르고 그저 흥겨워서 따라부르다가 전에도 말한 것처럼 만화책을 읽으면서 진실을 알게 되고 얼마나 부끄러웠었는지. 하필 살던 곳이 구로공단 근처였었다. 고작 몸이나 누일 좁은 방에서 웅크리고 자면서도 먹을 것까지 아껴가며 집에 돈을 보내던 가난한 누이들을 나 역시 적잖이 알고 있었다. 방값을 아껴보겠다고 그나마 좁은 방을 몇이서 나눠쓰기도 했었다. 전혀 상관없는 옆집 아이인데도 그리 아이들에게 인심이 후했었다. 지금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철이 든다는 것은 자신이 딛고 있는 세상을, 현실을 알아간다는 뜻일 게다.


일을 했으면 당연히 대가를 받아야 한다. 자기가 한 일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만 한다. 개인의 노동력 역시 자본가의 자본 만큼이나 훌륭한 생산수단이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것만으로 죄가 되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머 자신의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전태일부터, 그러나 아직까지도 노동의 현실은 참혹하기만 하다. 고작 무기계약직으로 바꿔준다는 말 한 마디에 감격의 눈물을 흘려야만 하다. 몸이 고되다. 마음까지 피폐해진다. 이제 곧 겨울인데 밤이 춥다. 먼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