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 마이웨이 - 그들이 꿈꿀 수 없는 이유, 그들이 사는 현실
꿈꾸지 않는 이유는 어차피 꿈꿔봐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야 한다. 내일을 견디고 버텨야 한다. 모레는 알지 못한다. 당장 살아야 하고 버텨야 하는 현실이 족쇄처럼 자신을 얽어맨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괜한 꿈이 절망과 좌절만 더 키우고 만다.
어른이란 자기의 아이들을 위해서 아무리 굶주렸어도 먹을 것을 남겨 건네는 이들이라 생각했었다. 하긴 내 아이가 아니다; 내 부모도 아니다. 자기와 자기 아이들만 배가 터지게 먹고는 남은 것까지 죄다 담아가느라 정작 나중에 오는 사람은 먹을 것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마음껏 자기의 길을 선택하라 말하고서는 먼저 가면서 죄다 길을 파헤치고 뒤집고 돌과 나무로 아예 막아놓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남이 정한 길로만 가는 것은 꿈이 없는 것이다. 자기 의지가 없는 것이다. 자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꿈이란 먼 미래를 위한 것이다. 오늘내일이 아니다. 모레나 글피도 아니다. 언제인지조차 아직 알지 못한다. 처음으로 수확이라는 것을 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유의미한 결과를 내기까지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는 시간들을 얼마나 어디까지 견디고 버틸 수 있는가. 노력에도 돈이 든다. 그냥 노력만 하는 만큼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당장 생활을 위해 일용직이라도 나가야 하는 사람에게 몇 년이나 공부해서 합격할지 여부도 할 수 없는 고시공부라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가.
먼 과거에 이미 자신과 상관없이 결정된 사실이기도 하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고, 태어난 부모가 다르고, 자라난 환경에 모두 다르다. 심지어 자기가 어떤 재능과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죽어가는 경우가 현실에서는 오히려 더 많을 정도다. 컴퓨터 살 돈도 없어서 컴퓨터란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아이가 과연 어떻게 프로그래머가 되는 꿈을 꾸어 볼 수 있을까? 하루 한 끼 풀죽도 제대로 못 먹는데 어떻게 키가 자라고 근육이 붙어서 운동선수의 꿈을 꾸어 볼 수 있을 것인가?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려 해도 어쨌거나 공부에만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쓸 수 있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주 소수의 천재들만이 그런 환경의 불리함을 딛고 남들보다 더 성공할 수 있다.
그러고보면 유일하게 김주만(안재홍 분) 정도가 타고난 조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가장 훌륭한 예가 되고 있을 것이다. 절대미각을 가지고 있다. 맛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정확하고 틀림이 없다. 그래서 타고난 재능을 살려서 홈쇼핑회사에서 누구보다 신임을 받으며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인 고동만(박서준 분)과 최애라(김지원 분)와 백설희(송하윤 분)는 어떠한가. 국가대표까지 지냈던 고동만이 태권도를 그만둔 이유를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최애라는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토록 간절하고 재능까지 뛰어난데도 아나운서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나마 백설희에게는 꿀 수 있는 꿈이란 것이 있기는 했을까? 무료하고 고단한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마모되며 지쳐간다. 그런 자신들에게 꿈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고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아직도 고동만은 격투기의 꿈을 버러지 못하고 있다. 최애라 역시 안내방송이나마 아나운서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안타깝게 바라고 있다. 그래서 꿈을 꾼다고 이루어지는가. 자신들이 꿈을 꾼다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있는가. 아니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후회없이 노력이라도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가. 포기하려 해도 자기가 먼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하긴 그들이 아직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충분히 꿈을 포기할 수 있을 만큼 기회를 누려보지 못한 때문인지 모른다. 할 수 있는 만큼 모든 것을 다 해봤기에 이제 미련없이 그만둘 수 있다.
서로의 꿈을 응원한다. 서로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대신 위로를 얻는다. 자신의 실패와 좌절에 대해 위로를 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동지다. 차마 그들이 서로에게 더 깊이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다. 너무 소중하니까. 너무 간절하니까. 그래서 도저히 잃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그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이끌림마저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게 만든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것이니 처음부터 꿈꾸지 않는다. 어차피 안 될 것을 알고 있으니 꿈이란 자체를 꾸지 않으려 한다. 자칫 돌이키지 못할 수 있기에 너무 심각한 사이는 되지 않으려 한다. 사랑조차 마음껏 할 수 없는 가련한 청춘들. 기성세대가 밥그릇까지 죄다 퍼먹고 깨뜨려버린 현실을 살아가는 고단한 젊은이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꿈을 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꿈은 사치고 방종이고 어리석음이다. 꿈보다 더 소중하고 절박한 자신들의 일상이 있다.
참 비루하다. 그래서 더 처참하다. 정말 오랜만이다. 항상 꿈이 넘치던 드라마에서 꿈마저 포기한 현실의 이야기가 넘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부당한 이유로 폭력을 허용해야 한다. 이미 자기가 노력해서 약속했고 이루어진 일인데 더 나은 조건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었다. 꿈이 간절했던 만큼 상실의 아픔은 크다.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만다. 그나마 최애라는 고동만에 기대어 울고, 최애라에 기댈 수 없었던 고동만은 옛고치인 황장호(김성오 분)를 찾아간다. 고단하고 외롭기에 그만큼 더 누군가를 찾아가 위로를 구해야 하는 따뜻하지만은 않은 시린 이야기가 펼쳐진다.
러브라인은 명확하다. 그냥 한 눈에도 최애라와 고동만은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 벌써부터 의식하고 있다. 단지 무의식이 그들의 감정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혹시 모를 두려움과 그리고 성급함이 그들로 하여금 철저히 자신을 억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냥 결론을 위한 열쇠다. 그러므로 그들이 서로와 자신들에게 솔직해지라면 지금의 비루한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계기는 충분하다. 종합격투기 경기장에서 고동만이 오랜 악연을 만났다. 그렇다면 최애라를 위한 동기와 계기는 무엇이 준비되어 있을까?
물론 그럼에도 드라마의 대부분은 판타지로 이루어져 있다. 옛코치 황장호가 아직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 정도로 고동만의 격투기 재능은 탁월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최애라의 아나운서로서의 재능과 실력 또한 작중에서 상당히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역설을 이루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꿈앞에 좌절은 커녕 꿈에 도전해 볼 수조차 없다. 일상의 고단함을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보다 더 어두우면서 불길하고 우울하기조차 하다. 어디선가는 실제 그런 식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도 할 것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우로서 충분히 잘생기고 예쁘지만 어떻게 평범한 일상의 자신들을 연기할 것인가. 깎고 덜고 지워낸다. 너무 평범하다. 우울함이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