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 마이웨이 - 너무 쉽고 너무 하찮은, 비루한 그들의 눈물
확실히 세상은 그렇게 달콤하지만 않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복처럼 급전직하 다시 냉혹한 현실로 던져진다. 단지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너무 쉽게 사람을 가지고 논다. 자기가 가진 돈과 힘이면 얼마든지 사람의 감정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억울하게 실제 그렇기도 하다.
섣부른 자존심으로 자꾸 엇갈리기만 하는 것이 문득 그립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워낙 사람들이 자기의 감정에 솔직해진 때문이다. 더이상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꺼리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거절당하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이 이번 한 번만 있는 것도 아니고 평생 사랑을 한 번만 할 것도 아니다.
하긴 그래서 고동만(박서준 분)과 최애라(김지원 분)가 속마음과 다르게 자꾸 엇나가고 있는 것일 게다. 서로에게 그들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존재였을 테니까. 어떤 경우에도, 최악의 상황에서도 켤코 잃고 싶지 않은 단 하나 뿐인 소중한 존재였을 테니까. 그래서 두려워지고 그래서 비겁해진다. 혹시라도 여기서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가 거절당하기라도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친구로마저 남아있지 못하게 되면 그때 자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러느니 어설프고 어색하더라도 그냥 친구로 남아있기를 선택한다. 너무 소중해서 차마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조차 두려운 사이인 것이다.
아무튼 부모의 교육이 문제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더 많은 부와 권력, 명성,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가지고 난 이후에 대해서는 부모마다 가르치는 것이 다르다. 특히 향상심이 강한 한국의 부모들의 경우 남들보다 우위에 서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자식을 가르치는 경우가 더 많다.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네 마음대로 해도 전혀 상관하지 않겠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사회적으로 성공만 하면 네가 하고 싶은대로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리고 덧붙인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기 있는 저 사람들처럼 된다."
그러니까 나는 의사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해도 된다. 고등학교 시절 자기에게 열등감과 굴욕감을 안겨준 상대를 찾아가 복수해도 법적인 문제만 없으면 그 또한 자신의 정당한 권리다. 자기를 거부했던 여자를 유혹했다가 이번에는 자기가 차기도 하고, 자기보다 잘났던 녀석의 한심한 모습을 보면서 우월감도 느껴본다. 자기가 느꼈던 굴욕감을 돌려주기 위해 그 녀석이 소중히 여기는 여자를 일부러 유혹하기도 한다. 자기처럼 성공한 삶을 살지 못한 그 녀석의 잘못이고, 자신의 성공을 보고 유혹에 넘어오는 여자들의 잘못이지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천진해 보이는 얼굴 그대로 어쩌면 박무빈(최우식 분)은 순수하기까지 하다. 자기가 그동안 배워온대로 충실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박무빈을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박무빈이 자기에게 진심일 것이라 행각했고, 그 지나칠 정도의 씀씀이가 부담스러웠던 탓이었다. 빚을 진 것 같았다. 이대로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면 자기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르는 것 같았다. 미안함 약간에 인간적인 호감 약간, 그리고 한 번 자기가 뱉은 말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 모두 박무빈의 거짓에 놀아난 것이었다. 모든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오히려 뻔뻔하게 자기를 농락하려 하고 있었다. 자기가 그렇게 쉬운 존재였는가. 고작 박무빈이라는 인간에게 농락당하는 하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는가.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렇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어느것도 돌려주지 못했다. 고작 선물로 받은 구두와 말 몇 마디가 전부였다. 억지로 속으로 삭이고 넘어갈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만 눈치없는 고동만이 애써 누르고 있는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다. 너무 비참하다.
그런 존재들인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격투기 재능을 가지고 있어봐야 고작 돈 몇 푼에 넘어가 자신의 장래마저 망쳐 버린다. 동네 아주머니 앞에서 되도 않는 쇼까지 해야만 한다. 자신들과 상관없는 곳에서 건물을 사고 파는 사람들 사이에서 체육관의 존폐까지 결정되고 만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지만 인간사회란 결코 인간을 평등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누군가는 중심에 있고 누군가는 주변에 있다. 누군가는 결정하고 누군가는 그에 따르기만 해야 한다.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어쩌면 박혜란(이엘리아 분)은 영리한 선택을 해왔는지 모른다. 가진 자들에 아부하며 그들에 기대어 그들의 힘을 빌어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정직하고 솔직하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 미덕이 될 수 없다. 당장 박혜란과 최애라의 달라진 처지가 그것을 말해준다. 그저 자기들끼리 위로하며 만족하고 살아갈 뿐.
김주만(안재홍 분)과 백설희(송하윤 분)의 장래가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상하기 되는 이유다. 만일 드라마가 지금까지처럼 냉혹한 현실을 치열하게 담아내려 한다면 이미 서로 사회적인 신분과 지위가 너무 달라진 두 사람이 아무일없이 맺어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누군가 그들을 휘두르려는 이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런 유혹 앞에 흔들리고 마는 자신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을 딛고 넘어서거나, 아니면 끝내 꺾이고 순응하거나. 신분을 뛰어넘어 평범하게 사랑하는 이야기란 아이들 동화에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도 보수적인 '공중파'드라마니까 현실이 아닌 판타지를 기대하게 된다. 그래봐야 고작 홈쇼핑회사 대리이고 계약직이라는 차이에 지나지 않지만.
아직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을 둘러싼 잔혹한 현실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서로에게 기대는 마음이 강해진다. 그만큼 그동안 서로에게 기대며 위로받아온 시간들이 더 소중해진다. 이런 때 기대 울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서로 뿐이다. 마음대로 자신의 추한 모습까지 드러내며 싸우고 화낼 수 있는 것도 서로 뿐이다. 너무 화나고 창피해서 속상해 죽을 것만 같은데 그래도 고동만 앞에서는 모양을 구기고 울음을 터뜨릴 수 있다. 그런 최애라를 묵묵히 곁에서 지켜줄 수 있다.
고백했을까? 그러면 이번에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이제 겨우 꿈을 향해 첫걸음을 떼었을 뿐이란 점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없다. 아예 더이상 도망치지 못하도록 궁지로 몰거나, 아니면 굳이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거나. 모험담이다. 두 사람의 진심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서로에게 이르게 된다. 아직 시간도 남아 있으니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그들을 괴롭히며 다시 멀리 돌아가게 만들까? 이쯤 되면 작가도 꽤나 악취미라 하겠다.
억울해서 울고, 화가 나서 울고,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또다시 울어야 하고,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또 서러운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데도 우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사족같다. 망상일 것이다. 그렇게라도 되갚아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난한 청춘은 비루하다. 잔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