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 - 강릉의 기억, 어느새 빠져드는 수다들
왜 또 강릉이냐? 원래 친가가 강릉에 있었다. 그래서 어렸을 적 시골 간다고 하면 외가가 있는 파주 아니면 친가가 있는 강릉이었다. 다만 친가라 해도 자주 들르기에는 교통이 너무 불편했다. 겨울에 눈이라도 오면 대관령에서 고속버스 배터리 방전될 때까지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했다. 교통 좋아졌다 해서 몇 년 전 다시 찾았는데 그래도 역시 태백산맥은 난이도가 높다. 방송을 보면서도 그래서 터널이 꽤 나왔을 것이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강릉은 90년대 초반까지의 강릉이다. 그 이후로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 번도 못 갔었다. 작은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연년으로 돌아가시면서 오랜만에 찾았는데 확실히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방송에 나오는 곳 가운데 또 상당수가 당시까지만 해도 외진 산속이었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사시던 집자리를 찾는데 어느새 큰 도로가 있었고 아파트단지까지 세워져 있었다. 오죽헌도 큰아버지댁에서 뒷산을 타고 허위허위 산길을 지나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나오는 곳이었는데. 무려 80년대까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도로도 없어서 산길을 따라 한참을 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밤나무도 많았고 근처에 딸기밭도 있었고, 큰아버지댁에서는 논농사와 참외농사를 짓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헛간 같은 곳에서 누에도 길렀었던 것 같다.
같은 강릉인데도 이렇게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다. 워낙 오랫동안 찾지 않았었고 하필 다시 찾은 것이 상사로 인한 것이다 보니 달라진 강릉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느낌이 없다. 도로를 보면서도 장례식을 치르려 저 길을 지났구나. 장례식을 마치고 저 길을 지나왔구나. 그래도 한 가지 바뀌지 않는 건 있다. 강릉만이 아니라 동해안 전반에 대한 것이다. 동해안에서 바다는 그냥 차를 타고 가다가 아무데서나 내려 그냥 들어가는 것이다. 한참을 차타고 달리다 보면 문득 끌리는 풍경을 찾아 그곳에 자신을 담그는 것이다. 그것이 동해다. 누가 작가 아니랄까봐 소설가 김영하가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90년대 이전의 강릉과 그리고 전혀 달라진 현재의 강릉. 그리고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우리 아버지 말씀이 강릉에서는 뭘 사먹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인간적으로 빙초산 회덮밥은 지금도 생각하기 싫은 끔찍한 기억이었다.
아무튼 덕분에 보면서도 이것저것 옛날생각이 나고 있었다. 다음주 경주방문이 기대되는 이유다. 자기의 고향에서 작가 유시민은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을까? 가 본 적 없는 피노키오박물관과 에디슨박물관은 일단 별개로, 그래서 오죽헌과 관련한 유시민과 황교익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긴 원래 그래서 5만원권의 모델로 신사임당의 초상을 쓰겠다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던 것이었다. 과연 여성이 아닌 인간 신사임당인가? 하지만 여성조차 아닌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었다. 오죽헌이 유명한 이유도 신사임당이 아닌 그의 아들 율곡이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참고삼아 말하자면 당시까지만 해도 데릴사위제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일단 장가가면 처가에서 첫자식을 볼 때까지 머물다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다시 친가로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었었다. 그같은 흔적은 장화홍련전에도 강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율곧의 친가는 경기도 파주에 있지만 정작 출생지는 외가인 강릉 오죽헌이었던 것이었다.
허난설헌과 마찬가지도 신사임당 역시 남편복 없기로는 도낀개낀이었다. 그렇게까지 막장은 아닌데 사람이 좀 무능하고 졸렬했었다. 사람들이 괜히 율곡 이이의 성공이 오로지 어머니 신사임당의 덕분이었을 것이라 지레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율곡의 아버지가 여러가지로 모자른 사람이었고 신사임당이 당대에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했을 만큼 빼어났기에 모두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영향으로 율곡이 그만한 성취를 이루었다 생각한 것이었다. 율곡의 어머니라서 신사임당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신사임당의 아들이라서 율곡이 뛰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신사임당이 돌아가자 아들 율곡이 슬픔에 못이겨 유학자로서 불가에 귀의할 생각까지 했을까.
허균의 사상 가운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이른바 호민론이었다. 백성을 각각 항민과 원민과 호민으로 나누는데, 항민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대로 조금도 의심하거나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르는 백성들이고, 원민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저 원망하는 마음만 가진 백성이며, 호민은 기회가 된다면 직접 행동에 나서는 백성들이다. 그 예를 멀리 진말의 진승과 오광에서 찾고 있으니 의도는 명확하다. 홍길동잔이 부지불식에 우연히 나온 소설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장안의 서얼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함께 혁명을 꿈꾸었다는 죄목으로 역적이 되어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실제 그가 역모를 꾸몄는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허균이 함께 어울렸던 다수가 당시 조선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던 이들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물론 프로그램의 주제가 이것이 아니었으니 사소하게 지나갔을 것이다. 이제는 허균이 허난설헌의 동생으로 알려진 경우마저 많아지고 있으니.
역시나 뇌과학에 대한 정재승 박사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다. 인간의 거짓말에 대해서만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다. 커피를 자주 많이 마신다. 단, 일을 할 때만이다. 일을 할 때는 너무 피곤해서 당분을 보충할 겸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오히려 쉬는 날에는 집에서 커피를 한 잔도 안 마실 때가 많다. 매일같이 마시던 맥주도 건강이 안좋아지면서 일주일에 세 번 이하로 줄이게 되었다. 담배는 원래 안 피고. 내 이야기만 한다. 어쩔 수 없잖은가. 내 블로그니.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름대로 부지런히 그 안에 내 이야기를 섞어넣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그리고 그 순간 그곳에서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돌려주었을까. 이건 수다다. 방송으로나마 그들과 함께했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런 게 즐겁다. 끊임없이 듣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대꾸하는 과정들이. 책을 읽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었다. 나는 내 습관이 나이먹어 책읽느라 생긴 안좋은 것이라 여겼었는데. 사람이 그래도 권위가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인데 고분고분 듣기도 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저 예능을 보면서도 이렇게 할 말이 많은데 책이라고 다르겠는가. 오히려 할 말이 많을 때 책을 읽는 시간도 늘어난다. 확실히 내가 공부 못한 이유는 알 것 같다. 잡생각이 너무 많다. 잠시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차라리 생각없이 멍하니 앉아있을 수 있을 때가 더 고맙고 소중하다. 그런 순간은 내게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주의력장애일까? 그런 망상들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 앞에 언어로 쏟아낸다면 그것이 허세고 거짓말이 될 것이다. 전직 국회의원 유시민의 정치와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는 생생한 현장감으로 들리고 있었다.
김영하 작가가 썼다는 무협소설은 나도 읽어보았다. 솔직히 그다지 무협소설로서 잘 쓴 작품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마 유명 무협소설작가 두 명의 공저로 되어 있을 것이다. 당시는 원래 그랬었다. 심지어 아예 절필하고 소설을 더이상 쓰지 않는 작가의 이름만 내서 소설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작가로부터 들었다. 새소년, 소년중앙, 어깨동무, 여기에 후발주자로 소년경향이 있었고, 그보다는 조금 문예성향이 강한 잡지로는 새벗이 있었다. 맞나? 또래들의 잡지식은 거의 여기서 비롯된 것들인 경우가 많다. 진짜 오만 이야기들을 잡지를 통해 보고 듣고 배우며 기초를 쌓았다. 그리운 듯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의 공통된 감상인 것이다.
벌써부터 오래 알고 지낸 사이들 같다. 어차피 한 번 얼굴도 못 본 사이들이지만 어느새 함께 수다를 떠는 사이 실제 그들과 함께 있었던 착각마저 느낀다. 진짜 별 쓰잘데기없는 그냥 흘러나오는 이야기들로만 이렇게까지 즐거울 수 있을까. 맥주라도 한 잔 걸치면서. 아, 나도 에일맥주 좋아한다. 진하고 씁쓸한 에일의 향기처럼. 언제까지나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중독이다. 덕분에 즐겁게 한 주를 견딜 수 있다. 가장 큰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