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의 숲 - 피할 수 없으면 즐기고 막을 수 없으면 올라타라!

까칠부 2017. 6. 18. 03:29

때로 악역이란 주인공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주인공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많은 경우 오히려 주인공보다 더 깊고 강한 주제를 감추고 있기도 한다. 주인공이 악역과 맞서면서 하나씩 껍질을 벗기듯 그 진실한 의도를 드러낸다. 어쩌면 드라마에서도 이창준(유재명 분)이 황시목(조승우 분)에게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황시목에 대한 이창준의 모호한 태도가 그같은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놓는다.


분명한 것은 이창준은 황시목을 좋아하고 있다. 어쩌면 부러워하고 어쩌면 질투하고 있다. 황시목의 정신병력에 대해 서동재(이준혁 분)가 보고했을 때 이창준이 보인 태도가 그것을 말해준다, 어떻게 황시목과 같은 인물이. 그처럼 냉정하고 완고하고 철두철미한 천생이 검사인 인재가. 장인인 장인인 한조그룹의 회장 이윤범(이경영 분)이 황시목을 목표로 계획을 꾸미라 했을 때도 상당히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막을 수 없으면 올라타라. 아마 영은수(신혜선 분)의 아버지 영일재(이호재 분) 장관을 상대로 작전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 것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는지 모른다.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압력에 차라리 원래 자기의 의도인 양 올라타 버렸다.


모든 검사가 오로지 부귀와 영화만을 바라고 검사가 되고자 마음먹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바라고,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귀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그 어려운 사법시험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법을 배웠다고 하는 양심과 자존감 그래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검사다운 검사가 되고 싶다는 다짐 정도는 대부분 한 번 씩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 얼치기같은 정의감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검찰이라는 조직이 문제지 검사 자체가 처음부터 그토록 부패하고 악취로 가득한 인간들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는 그런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자신의 순수하던 시절을 후회하며 그리워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나름대로 어려서부터 수재소리 들으며 주위로부터 떠받들여졌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기 이외의 사람들을 한참 위에서 내려다보는 삶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 한 번 씩은 꺾이면서 비로소 세상에 적응하며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아주 소수의 아이들은 그런 과정조차 훌쩍 건너뛰고는 진짜 모두가 우러러보는 자리로 단숨에 올라서고는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장래가 촉망되던 검사라 할지라도 한주그룹 정도의 유력재벌의 사위가 되었을 정도라면 이미 젊은 시절부터 그 능력과 가능성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봐야 한다. 확실히 그 대단하다는 황시목과 머리싸움을 하면서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유일하게 밀리는 것이라면 도덕적 명분과 정당성이다. 그의 가장 아픈 역린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화나고 그래서 황시목을 가지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지금 당장은 황시목이 쓰러뜨려야 할 적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섣부르게 예단하는 이유인 것이다. 장인인 이윤범을 만난 자리에서 그의 표정과 태도가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가족이 아니다. 아내의 아버지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재벌기업의 회장이며 자신을 지배하는 보스다. 하필 이창준이 죽은 박무성(엄효섭 분)으로부터 받은 접대가 고작 여자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당장은 이창준이 자신의 약점을 쥔 서동재를 노리고 있지만 서동재의 반격이 시작되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황시목이 이창준을 노리고, 서동재와 이창준이 서로를 노리는 사이 배후에서는 이윤범이 더 큰 일을 꾸민다. 결국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윤범까지 잡으려면 고리가 필요하다. 유재명은 사실 그렇게 유명한 이름은 아닌데 이창준의 연기만큼은 무어라 말하는 것조차 송구할 정도다. 매순간의 모든 표정과 눈빛이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정말 뜻밖의 반전이었다. 설마 박무성이 죽기 전날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영은수였다니. 박무성을 마지막으로 만난 그 사람이 박무성을 살해한 용의자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동기를 가진 인물이 죽기 전날 마지막으로 박무성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대화였을까? 그리고 영은수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대충의 내용은 짐작한다. 다시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그렇지 않아도 이윤범이 황시목을 상대로 계획을 세우라 지시한 상황에 겨우 하나 찾은 단서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만다. 아니 엉뚱한 방향은 아닐지 모르겠다. 영은수의 아버지 영일재의 몰락에 박무성까지 가담했다면.


아무튼 검찰을 동원해서 법무부장관이던 영일재를 철저히 몰락시킨 이윤범의 모습이 마치 실제 있었던 어떤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상대적으로 작은 것들도 있었고 그보다 더 큰 것도 있었다. 설마 그렇게 형편없이 망가질 줄이야. 길에 쓰러진 것을 누군가 찍어서 올렸다. 다시 재기하지 못했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철저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리고 그것을 주모한 이윤범은 나약하다며 비웃는다. 바로 얼마전에도 내용은 다르지만 방향이 비슷한 사례가 하나 현실로 이루어진 바 있었다. 역시 시의성이었을까. 하긴 원래 부패한 검찰의 이야기는 대중매체의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검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원래 그렇다.


황시목이 아직 감추고 있는 과거는 무엇일까? 어린 시절 황시목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리고 지금도 황시목을 부여잡고 옭죄고 있는 그것은 또한 어떤 것일까? 악역인 이창준에게 과거가 후회라면 아무래도 주인공인 탓에 황시목에게 과거란 성장이다. 그런 과거를 딛고 지금의 황시목이 되었다. 이창준의 의도된 대사는 작가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과거가 현재까지 정의하지 않는다. 현재는 오직 현재다.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