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 - 먼 옛날 알지도 못하는 조상님들과 수다
문득 생각했다. 아, 저기가 전부 우리 조상님들 무덤이라는 거지? 우리파 시조가 경순왕 3째 아들이다. 한 마디로 미추왕 정도면 내가 가진 y유전자의 주인이라 해도 좋은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가 뭐 대단한 벼슬이라도 했다 하면 그다지 믿지 않았을 텐데 7대 독자에다 어려서 고아가 된 탓에 종가집 머슴살이를 했다는 말이 납득하고 말았다. 종가집에서 같은 문중이라고 고아인 할아버지를 거두어서 장가까지 보내주었다는데 또 그걸 해방되고 종가집 가서 확인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더 의심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다.
아무튼 그리 생각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물론 신라 왕족이 박씨, 석씨, 김씨 셋이라 신라의 왕릉이라 해서 전부 우리 조상무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 서로 혼인을 통해 맺어졌기에 모계까지 따지면 아주 상관이 없다 할 수도 없다. 그런게 바로 상상(想象)이다. 그 시절 나에게 y염색체를 물려준 조상님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리고 조상님들은 어떻게 신라까지 흘러들어와 왕족이 되었던 것일까? 참고로 미추왕이라면 이후 유례 이사금때도 이서국의 침략을 막는데 도움을 주었고 신라를 버리려는 김유신의 혼을 달래며 신라의 수호신적인 존재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갔던 생각도 났었다. 김영하의 설이 내가 보기에 더 맞는 것 같다. 그때도 기차타고 바로 경주까지 갔었다. 철도도 경부선이 먼저 깔렸고, 도로도 경부고속도로가 먼저 생겼다. 서울과 부산을 있는 교통로는 일본과 나아가 미국과의 교역이 필수이던 시절 생명줄과도 같았다. 솔직히 좋은 기억은 그다지 없었다. 수학여행 가서 묵었던 여관의 음식이 진짜 쓰레기라서. 극기훈련과 더불여 양대로 꼽는다. 다만 그때는 유시민이나 김영하, 정재승, 황교익처럼 그런 대화를 주고받을만한 친구들이 거의 없어서. 유희열의 말처럼 진짜 술먹고 사고치는 고민이 더 앞서던 호르몬폭탄시절이었다. 사실 가장 공감갔던 이야기다. 기차안에서의 대화는 수학여행을 가던 그 시절에서 시간을 더한 만큼이다.
나름대로 심각한 이야기도 주고받는다. 그래도 성인인데 현실의 민감한 문제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1987년 6월항쟁과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실의 문제가 대화의 주제로 등장한다. 인간의 역사가 가지는 절망과 좌절, 그리고 포기,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믿어 의심치 않는 희망이 그 사소한 대화 속에 등장한다. 때로 상당히 전문적인 깊은 이야기까지 오가지만 결국은 모두가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실제의 이야기들이다. 역시 음식 이야기가 나오니까 황교익이 대화를 주도하게 된다.
확실히 달라진 점은 유시민의 분량이 전보다 많이 줄었다. 의도한 것인지 김영하와 황교익의 분량이 그동안 프로그램을 주도하던 유시민과 정재승과 비견할 만큼 늘어나 있었다. 유시민의 경우는 일부러 한 발 물러나서 유희열의 역할을 나누어 다른 사람들에게 묻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래서 더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엇다. 특히 청국장과 관련해서는 황교익과 나의 시각이 거의 같다. 그냥 볏짚과 더불어 타르타르 스테이크처럼 안장 아래 삶은 콩을 넣어두면 어떻게 되었을까? 된장은 그보다 나중에 만들어졌다 여기고 있다. 설이면 떡국을 끓여먹던 것도 겨울에 쌀을 찧어 떡으로 만들어 놓으면 꽤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었던 점에 주목한다.
과연 여행이라 하면 명승지 찾아서 구경하고 맛집 들러서 먹고 마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 이어지는 뒷이야기들이 있구나. 여행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다. 아니 원래 그러고 놀았었다. 오만 상상을 하면서. 그보다 더한 망상까지 더해서. 황교익이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어째서 해장국을 먹으면서 사람들은 냉면 이야기를 할까? 지금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이후를. 다음을. 내일을. 언젠가를. 그래서 더 풍부한 이야기가 그 안에 있었다.
역시 나도 한 잔 하면서 보았다. 해물볶음을 만들었는데 다 먹고 고추부각까지 꺼내서 맥주랑 마시며 보았다. 나도 한 마디 더하고 싶은데. 그럼에도 인류의 역사는 진화해 왔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 짧은 시간 동아나 여기까지 진화하고 있었다.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중독이다. 원래 전에도 '남자의 자격'에서 멤버들의 삶이 묻어나는 일상적인 대화들에 빠져들고 했었다는 것이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전혀 낯선 이야기들이 저도 모르게 자신을 대화의 가운데 있게 만든다. 미치겠다. 벌써 세 번 째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