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 마이웨이 - 뒤늦은 후회와 깨달음, 그리고 황복희의 진실
원래 사랑 자체가 이기적인 것이다. 상대를 위하는 것 같지만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이 자기도 기뻐서. 내가 좋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들을 해주고, 내가 기쁘기 때문에 기뻐하는 일들을 해준다.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결국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정작 받는 당사자의 입장이나 감정은 그다지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너무 일방적이었다. 너무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었다.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상대가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자기가 상대를 사랑해주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예법에서도 과공은 비례라 말한다.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면 오히려 상대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 적당히 상대 역시 자신도 충분히 예의를 갖추고 있다 여기도록 배려하는 것도 예법의 하나다. 상대 역시 충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여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사랑의 기술일 수 있다. 그 점에서 백설희(송하윤 분)도 서툴렀다. 어째서 김주만(안재홍 분)으로 하여금 미안한 감정을 가지도록, 충분히 보답해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모멸감과 자괴감마저 느끼게 만들었던 것일까?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더 대단한 것들을 해주고 싶었다. 백설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그러니까 자기가 백설희를 사랑하는 만큼. 지금껏 백설희로부터 받았던 그 이상으로. 하지만 김주만 역시 백설희와 마찬가지로 일방통행이었다. 어쩌면 열등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백설희나 김주만이나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자기가 사랑받기에 너무나 부족하다 여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안달하듯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자기의 일방적인 마음만을 쏟아내기에 급급했던 것이었을 게다. 그 마음이 제대로 상대에게 닿고 있는지도 전혀 확인하지 못한 채. 그렇게 어긋나고 엇갈린 감정들이 어느새 돌이킬 수 없이 덧나고 비틀리고 만다.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자기가 얼마나 백설희를 사랑하는가를. 심지어 장예진(표예진 분)에게 잠시 흔들렸던 감정마저 사실은 백설희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백설희를 보지 않고 있었다. 백설희가 무엇을 바라는지. 자기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그러니까 자기는 백설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면 되는지. 그래서 방황했다. 뻔히 백설희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는데 어디로 어떻게 돌아가면 되는지 순간 헷갈리고 말았다. 너무 가까운 곳에 늘 있어왔던 탓에 거리감을 잊고 말았다. 자신들은 아직 부부도 아니고 단지 사귀는 사이일 뿐이다. 헤어지자는 말 한 마디로 남이 되어버리는 그런 사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했고,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었다.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그리고 더이상 김주만의 마음을 믿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먼저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만다. 그런 그들의 일방적인, 그러나 누구보다 간절한 진심이 충돌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그런 상대에게 역시나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진심을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뒤돌아서고 있었다. 누구나 겪는 일이다. 내가 사랑한 만큼 사랑받지 못할까봐. 사랑받은 만큼 사랑해주지 못할까봐. 그래서 대화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일 텐데.
너희는 사귀지 말라는 말의 진짜 뜻인 것이다. 아직 친구인 동안에는 서로에게 조심스럽다. 적당한 거리와 긴장감이 진심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려는 이기의 폭주를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게끔 해준다. 내가 사랑해서가 아니라 상대로부터 미움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관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럼이 없다. 거리가 사라진다. 함께 끌어안고 누운 침대처럼 거의 0에 수렴해 가고 있다. 그러다 자칫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릴 수 있다. 백설희를 너무 믿었기에 오히려 백설희를 배신하게 되었던 김주만처럼.
하지만 확실히 다르다.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백설희나 김주만과 너무 달랐다. 상대의 말도 듣지 않고 일방통행으로 그저 자신의 진심만을 강요할 뿐인 백설희와 김주만과 다르게 고동만(박서준 분)과 최애라(김지원 분)은 그동안 이미 상대에게 자기가 바라는 것들을 말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끝까지 자신을 속여가며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당당히 하지 말라고 한다. 당당히 하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원하니까 하지 말라. 내가 원하니까 해야만 하겠다. 그러니까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당장 이것들부터 나를 위해 해주어야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면 과연 그것들 가운데 자신은 무엇을 해주어야만 할까? 그것은 백설희와 김주만 커플과 다른 또다른 답이 되어 주지 않을까? 누구보다 이기적인 동기로 그들은 같은 무대에 서로 자신의 꿈을 가지고 함께 서게 된다.
황복희(진희경 분)의 정체가 밝혀졌다. 아니 아직이다. 단지 황복희 역시 어렸을 적 고동만과 최애라의 고향에서 함께 살았었음을 알게 되었다. 최애라등이 세들어사는 빌라에 황복희의 아이가 살고 있다. 아들인가 딸인가는 모른다. 무언가 안좋은 일로 어려서 떠밀리듯, 혹은 도망치듯 최애라들의 고향을 떠나 일본에서 살게 되었다. 백설희의 어머니를 비롯 여자들 사이에서는 불편한 기억이지만 정작 고동만의 아버지나 최애라의 아버지나 남자들은 친근하게 백설희로부터 오빠라 불리고 있었다. 황복희가 최애라 등이 세들어사는 빌라의 주인이 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가지 도움을 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필 고동만과 최애라의 아버지가 황복희를 찾아온 그 시각 배달시킨 중국요리를 가지고 찾아가게 된다. 아버지들은 숨고 오해한 아들과 딸은 황복희의 만류에도 그들을 찾아 나선다. 친아들이 아닌 것이 분명한 남일도 동참한다.
오히려 이번에는 최애라과 고동만의 조역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미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교환하기까지 한 최애라와 고동만 사이에서 더이상 나올 이야기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아직 남아있는 과정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급한 것은 이별을 선언한 백설희와 김주만이다. 어떻게 그들은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것인가? 다시 전처럼 행복한 커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낙심한 채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떠나고 그 빈자리가 너무 큰 것을 알고 홀로 흘리는 눈물처럼 그렇게 세월에 맡겨야 할 지도 모른다. 그에 뒤지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사랑하거나 아니면 사랑했거나.
최애라에게 두 곳에서 동시에 면접제의가 들어온다. 포기했던 방송국과 고동만으로 인해 새롭게 목표하게 된 격투기 아나운서다. 고동만도 시합을 앞두고 있다. 지난 10년동안 애써 없었던 일처럼 자신을 속인 채 스스로 얽매어왔던 과거의 기억과의 승부다. 과연 최애라에게 거절당한 대학교 선배 PD가 강행하라 한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당장 황복희와 두 사람의 부모의 관계도 흥미롭다. 완급이 절묘하다. 오래 가는 법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