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검은 반바지

까칠부 2017. 7. 8. 06:56

내게는 검은색 반바지가 하나 있다.

그러나 그 반바지는 원래 하얀색이었다.

하얀 녀석이 항상 그 위에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면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자기 자리를 찾아 올라가 웅크렸다.

밥을 먹을 때도 빤히 쳐다보며 발톱을 옷깃에 박고 있었다.

깨어있을 때도, 잠잘 때도, 놀고 싶을 때도, 말썽을 부릴 때도, 아파서 먹지 못할 때도 여전히,

때로 녀석의 무게로 무릎을 펴지 못할 때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녀석을 보내기 전 앙상해진 녀석을 느꼈던 것도 야윈 허벅지였다.


올해 반바지는 검은색이다.

여전히 하얀 색이 점점이 묻어 있다.

석 달이 지나가고 있어도 작년에 묻은 흔적들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바람은 지나고 흔적이 남는다.

세월이 지나고 기억이 남는다.

바지는 검어졌어도 하얀 색은 남아 있다.


요즘은 그다지 그립지도 않다.

이제는 보냈구나.

이제는 완전히 떠나보냈구나.

때때로 느끼는 공허함의 이유다.

이제 녀석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반바지에는 녀석의 털이 아직 남아 있다.

녀석이 누워 지내던 담요를 빨았더니 세탁기 가득 뭉친 털이 나온다.


여름에는 땀띠가 많았다.

올해는 땀띠가 없을 듯하다.

계절은 무심히 다시 찾아오고 지나간다.

기억마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