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부탁해 - 이경규 입맛이 내 입맛
생선은 비린내가 나야 한다. 고기는 노린내가 나야 한다. 특히 내장은 악취에 가까운 냄새가 듬뿍 배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음식들이 자극적이기만 하고 너무 말랑해서.
이를테면 순대국도 어렸을 적에는 커다란 들통에 내장을 통째로 넣고 고추가루만 시뻘겋게 풀어서 팔팔 끓여 내놓고는 했었다. 그냥 냄새만 맡아도 그게 돼지내장이구나 알 수 있었다. 감자탕 역시 아직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음에도 근처만 지나가도 옷에 밸 것 같은 냄새에 침을 삼키고는 했었다.
그러니까 과연 쇠고기 요리인데 입맛을 돋구는 그 냄새가 원래 쇠고기에서 나는 냄새인가 하는 것이다. 닭고기를 먹는데 닭고기의 원래 냄새를 맡고서 입맛을 다시는 것인가. 그보다는 어쩌면 향신료라든가, 다른 부재료라든가. 그러고보면 어떤 요리들은 단지 주재료만 다를 뿐 양념이 같아서 냄새든 맛이든 크게 차이가 없는 경우마저 적지 않았었다.
오랜만에 속이 다 시원해졌었다. 재료 이것저것 섞는 것 좋아하지 않는 것도 딱 내 입맛이다. 돼지고기는 돼지사골국물에 적당이 썰엏어 돼지냄새만 강하게 끓여먹는다. 기름도 적당히 둥둥 뜨고. 또 적당히 씹는 맛도 있어야 하고. 이게 돼지고기를 먹는지 쇠고기를 먹는지 닭고기를 먹는 것인지. 맵기나 더럽게 맵고.
아저씨 입맛이라기보다 어려서부터 원래 그런 맛을 좋아했었다. 정확히 그런 냄새를 좋아했었다. 무엇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을 것 같은. 먹기도 전에 코로 그 맛을 느끼는 것 같은.
이경규가 오래 가는 이유다. 적당히 타협하며 시류를 따라가는 것 같으면서도 자기만의 중심을 결코 놓지 않는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이경규는 이경규다. 이경규여야만 이경규다. 시원했다. 확실히 후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