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 - 너무 과잉되고 너무 앞서가는, 시청자가 관객으로 남다

까칠부 2017. 7. 27. 06:13

카타르시스란 한 마디로 감정의 정화다. 결말에서 카타르시스는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과정에서의 카타르시스는 지금까지 한껏 고조되었던 긴장과 감정을 한꺼번에 지워버리고 만다. 워낙 여운이 강해서 다시 시작하기도 쉽지 않다. 흔히 김빠진다고들 말한다. 결말에서 한꺼번에 터뜨려줘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작게 터뜨리는 동안 백신이라도 맞은 것처럼 면역이 생기고 만다.


연기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연출 역시 지나치게 있어 보이려 한 탓에 정작 드라마의 내용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때로 건조할 정도로 담백하게 사건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허구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여지를 만들어 주었어야 했는데 제작진의 의도만 너무 앞서 가고 만 때문이다. 시청자는 오로지 관찰자로써만 남겨진 채 오로지 배우들만이 유리벽 너머에서 자기들끼리 연기에 몰두해 있다. 한 마디로 드라마다. 드라마가 드라마임을 들키는 순간 드라마는 더이상 드라마가 아니게 된다.


배우들의 감정만 너무 넘쳐서는 안된다. 너무 앞서가서도 안된다. 충분히 시청자가 따라올 수 있도록 여지를 두고 속도와 수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 빈 구석이 보여야 시청자도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자신을 이입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먼저 깨닫고, 그래서 심지어 한참 추월해서 앞서가며 오히려 뒤따라오는 배우들을 기다리기도 한다. 근본은 우월감이다. 드라마가 시청자를 저 높은 위에서 찍어누르는 것이 아니라 무대밖의 관객이라는 입장을 십분 활용해서 오히려 배우들을 굽어보게끔 하는 것이다.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나도 저 대단한 배우들과 함께 가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에는 오로지 배우들 뿐이다. 배우들이 맡은 배역들 뿐이다.


문채원(하선우 역)은 역시 이런 식으로 지나치게 힘을 준 연기에는 목소리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바이브레이션이 심한 목소리는 지나치게 목소리에 힘을 주었을 때 상당히 거슬리게 들리게 된다. 문득 어느새 문채원도 나이를 먹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지친 외모와 지쳐 보이는 목소리가 함께 시청자를 지치게 만든다. 차라리 표정과 목소리에서 조금 더 힘을 빼고 연기했으면 어땠을까? 이전 로맨스 드라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힘을 뺀 일상의 연기를 보여줬다면 지금처럼 불편한 느낌은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손현주(강기형 분)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빛에까지 힘을 주고 시청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리 진짜 수사관이라도 그런 식으로 매순간 긴장한 채 힘주고 있으면 먼저 지치지 않을까? 이준기(김현준 분)는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그저 감정만 앞서는 수사관의 전형이다. 감정이 정의는 아니다. 그렇다고 감정이 악도 아니다. 감정은 그냥 감정이다. 김현준의 캐릭터와 감정이 도저히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사건의 전개 역시 뜬금없다. 하나씩 단서를 주고 시청자도 함께 추리해가는 방식이 아니라 미처 단서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이 제작진의 속도에 맞춰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가 드라마를 드라마로 만들고 있는데 시청자가 참여할 여지조차 없는 전개는 시청자를 철저히 관객으로 남기고 만다. 아무리 이야기가 재미있어도 그것이 결국 사실이 아닌 허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되면 허무해지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데 어떻게 드라마를 보며 웃고 울고 화내고 기뻐할 수 있을까. 박재된 표본처럼 끔찍한 연쇄살인의 현장을 보면서도 범인에 대한 분노마저 거의 느끼지 못한다. 도대체 범인이 누구일까 궁금해지지도 않는다. 심각하다. 꽤 많은 자본과 노력을 들인 드라마인 듯한다.


사실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장르의 드라마를 좋아하기에, 더구나 최근 좋은 드라마를 많이 만들고 있는 tvn이었기에 이거는 한 번 기대해 볼 만하다. 배우들의 매력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장르가 반, 배우가 반이었다. 장르는 의도만 앞서고, 배우는 배역과의 사이에 붕 떠 있었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이다. 내내 집중하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한숨만 내쉬고 있었으니. 한 번은 더 기다려봐야 할까? 아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