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 - 돌고돌아 이창준, 드라마라는 게임의 승자
어제 늦게까지 게임하느라 결국 못보고 지금에서야 겨우 볼 수 있었다. 엔씨가 비러먹을 놈들이다. 아무리 퀘스트를 줘놓고 그거 클리어하는데 7시간이나 걸리게 만들 게 뭔가. 오기로 한 번은 했는데 다시는 못할 것 같다. 결국은 엔씨를 욕할 일이다. 덕분에 또 늦게 자서 일어나기도 늦게 일어났다. 악순환이다.
결국 돌고 돌아 이창준(유재명 분)이다. 단지 동기가 다르다. 처음 황시목(조승우 분)이 이창준을 의심했던 것은 죽은 박무성이 이창준이 저지른 부정과 비리에 대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부패한 검사 이창준이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박무성을 살해했다. 그런데 오히려 김가영의 경우는 자칫 박무성을 죽여서까지 감추려 했던 치부가 드러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배제하는 이유가 되었다. 진짜 죽이려 한 것도 아니었고 살아있는 채로 사람들에게 발견될 수 있도록 굳이 번거로운 방법까지 동원해야 했다면 최소한 김가영의 입을 막아 자신의 치부를 가려야 할 사람에게는 동기가 없다 봐야 한다. 물론 그 동기 자체가 치부의 은폐가 아닌 은폐된 범죄와 비리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것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창준이 은사라 할 수 있는 영일재(이호재 분) 장관을 배신한 이유가 아내 이연재(윤세아 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설득력을 더해준다. 단지 인정에 이끌린 것일 뿐 사람 자체가 악에 물든 것은 아니었다. 인정이 그로 하여금 악과 손잡게 했을 뿐 이창준이라는 사람 자체가 악인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후회가 있다. 번민과 갈등이 있다. 대개는 그런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후회하고 고민하고 갈등하다가 끝내는 타협하고 만다. 타락한 자신을 원래의 자신이라 여기고 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했었다. 선택이 아닌 필연이다. 자신의 판단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따른 당위였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아무리 부패한 공직자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법도 정의도 무시하고 개인의 이익과 욕망만을 챙기려 공직에 나섰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창준은 달랐다.
이를테면 수치심일 것이다. 자기에 대한 모멸감인 것이다. 누구보다 존엄하고 당당한 자신이기를 바랐었는데 고작 이윤범(이경영 분)의 하수인이 되어 혹시라도 남이 알까 두려운 일들을 하게 되었다. 이창준이 오히려 자신을 의심하여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황시목을 은연중 아끼며 보호하고 있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황시목만은 자신과 다르기를. 자신이 가지 못한 그 길을 흔들림 없이 갈 수 있기를. 우습게도 그것은 서동재(이준혁 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자신을 성가시게 불편케 하는 황시목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으면서 정작 영일재 앞에서만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검사라는 무의식을 드러내고 만다. 질투였을지 모르겠다. 자기는 황시목처럼 그럴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우습게도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많은 것들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그는 검사로서 원래의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지킬 것들이 사라졌을 때 그는 검사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 되어 있었다.
하수인인 박무성을 죽이고, 진실을 알릴 매개가 될 수 있는 김가영을 납치하고, 그럼으로써 황시목을 끌어들여 그 배후를 향한 수사를 시작할 수 있게끔 만든다. 사실 그게 진짜 의도였을 것이다. 박무성을 살해함으로써 황시목은 박무성을 살해한 범인을 쫓는 가운데 그 배후에 숨은 이들에 주목할 것이고, 김가영의 존재는 박무성이 그동안 관계해 온 각계의 인사들을 잇는 고리가 되어 준다. 그 결과 오랜 친구인 용산경찰서장이 체포되어 수사받는 저치가 되고 말았다. 그 다음은 누구일까? 바쁘게 준비한다. 아내의 재산을 옮기고, 아내를 외국으로 내보내고, 이윤범의 재산까지 움직이려다 그 행동을 이윤범에게 노출시키고 만다. 황시목이 마침내 이창준의 존재를 알았다. 윤과장(이규형 분)의 뒤에는 이창준이 있었다. 이창준의 진짜 의도가 이 모든 악의 배후인 이윤범과 더불어 황시목이 이르러야 할 목표가 되어 버린다. 그곳에는 과연 무엇이 황시목을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진실이 시청자를 기다리고 있을까?
참 나쁜 사람이다. 원래 작가는 좋은 사람이어서는 안된다. 상식을 부숴야 한다. 관념과 관성을 비웃을 수 있어야 한다. 항상 알량한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섣부르게 예상하고 그리고 배신당한다. 어설픈 기대는 어처구니없이 배반당하고 만다. 그 이상을 보여준다. 시청자가 예상하고 기대한 그 이상을 반전을 통해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그리고 감탄하게 만든다. 드라마라고 하는 게임의 승자일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치밀한 설정과 구조와 구성이 자신도 모르게 드라마에 설득당하게 만든다. 기대가 되는 작가다. 설마 신인이라니. 원래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들은 항상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한 회 남았다. 드디어 내일이 마지막이다. 거의 모든 사실들이 드러났다. 거의 모든 진실들이 밝혀졌다. 영은수를 살해한 범인이 누구인가도 거의 정체가 드러났다. 마무리다. 사실 가장 힘든 작업이다. 마지막까지 힘을 잃지 않고 통쾌하면서 여운이 남는 마지막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 불안은 없다. 확신이다.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