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조작 - 가볍지 않은 불쾌감, 선뜻 보기 힘들어지는 이유

까칠부 2017. 8. 9. 06:24

그럼에도 크게 끌리지 않는 것은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불편한데 가볍다. 보고 있으면 괜히 심각해지는데 한 편으로 너무 허술하다. 고작 이런 것인가. 나 자신이 느끼는 불쾌감에 이유가 사라진다. 아, 짜증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공중파 드라마에 어울린다. 진지하게 자세잡고 보기 위한 드라마가 아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습관처럼 틀어놓고 다른 일상과 함께 흘리며 봐야 하는 드라마다. 몇 장면 놓치거나 한다고 다음 내용을 이해하는데 크게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상투적인 줄거리와 장면들이 매순간 집중해서 봐야 하는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 대충 보고 대충 즐기고 대충 잊는다.


코미디같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실내세트에서 촬영된 콩트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 시간과 공간이 서로 이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모든 공간은 따로. 각자의 시간도 따로. 그 와중에 주요인물들 한무영(남궁민), 이석민(유준상), 권소라(엄지원 분), 구태원(문성근 분)의 개인플레이만 돋보인다. 마치 각자의 모노드라마를 하나로 묶은 듯 철저히 중심인물들 개인의 플레이에 의존한다. 그만큼 제작의 편리성도 담보할지 모르겠다. 내가 현장에 직접 나가서 확인한 사실이 아니니 알 수 없지만.


하여튼 그런데도 불구하고 설득당하는 것은 부패한 검사 임지태(박원상 분)의 촌철살인같은 한 마디 때문이었을 것이다.


"꼭 죄가 있어야만 잡아넣나? 기소가 될 수 있도록 메이킹하는 것이 우리 일 아닌가?"


현실에서도 워낙 흔하게 보고 듣게 되는 것이 그런 경우들이다 보니. 언론과 법과 정의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더럽히고 타락시키는지. 그로 인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인지. 배운 놈들이 사고치면 더 크게 사고친다. 똑똑하고 많이 알고 그래서 힘까지 가진 놈들이 사고치면 그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고작 박응모따위는 그들의 도움 없이는 시시한 잡범으로 끝나고 마는 정도라는 것이다. 무엇이 세상의 악을 키우고 죄를 덮어 오물투성이로 만드는가.


그래서 처음부터 말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무영은 기레기였던 것이었다. 기자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까. 언론이라는 것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단지 언론의 보도라는 이유만으로 사실로 여기는 사람들이 아직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데 언론인이라는 것들이 그에 대한 어떤 자각도 책임의식도 없다. 당장 MBC 주제에 '피노키오'같은 언론의 양심을 다루는 드라마를 아무 가책없이 만들어 방영하는 현실을 보라. 언론의 양심이란 언론인 자신들에게도 고작 통속드라마에서나 등장하는 판타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벗어난 기레기가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려 한다.


마침내 권소라와 한무영이 손을 잡았다. 저들이 너무 파렴치해서. 너무 끔찍하도록 크고 강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것이란 현실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자살방조로 만들었다. 윤선우(김주승 분)의 자살을 계기로 남태준의 위증자백을 받아냈는데 그마저 유서를 들고 나와 자살방조로 만들어 판을 다시 뒤집었다. 그런 짓까지 하는 것들이다. 부장검사인 임지태가 적극적으로 그들의 편에서 권소라를 찍어누르고 있었다. 어떻게 다시 뒤집힌 상황을 바로잡고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인가.


전찬수(정만식 분)의 과거가 밝혀졌다. 처음에는 누구보다 정의롭고 강직하던 경찰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그를 지켜주지 않았으니까. 누구도 그런 그를 지켜주려 하지 않았으니까. 차가운 세상 앞에 알몸으로 서있는 두려움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편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이상 괴로울 일도 없다. 스플래쉬팀에 구태원의 지시로 합류하게 된 나성식(박성훈 분)의 선택은 그래서 흥미롭다. 현실일까? 아니면 그저 드라마니까 가능한 판타지였을까?


아무튼 스플래쉬팀으로의 복귀를 거절한 옛동료에게서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특정언론을 떠올리게 된다. 아직도 보는 사람이 많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기대로 남아 그들을 붙잡게 만드는 것이리라. 더이상 배고프고 싶지 않다. 힘들고 고단한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더 쉽고 더 편한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그래서 구태원도 말한다. 언론인이 되기 보다 직장인이 되라. 회사에 충성하고 헌신하는 월급쟁이가 되라. 기자가 오로지 진실만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던 것은 최소한 한국사회에서는 잊혀진 시대의 신화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타락한 무당처럼 기레기가 그 역할을 이제 대신하려 할 뿐이고.


그다지 보기 즐거운 드라마는 아니다. 남궁민의 오버에도 웃을 수만은 없는 불쾌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단순히 드라마를 위한 허구이거나 과장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저들의 저항은 더 강해질 것이고 한무영들이 겪게 될 위험이나 곤란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들의 패배는 자신의 패배이기도 하다. 끝내 이길 것을 알면서도 그 과정을 함께하기가 이렇게도 힘들고 피곤한 일인가.


다음 타겟은 전찬수에게로 맞춰졌다. 그리고 윤선우가 누명을 써야 했던 진짜 살인범의 정체로 향한다. 구태원도 조영기(류승수 분)도 단지 그 과정에 장애물일 뿐이다. 과연. 한 주를 기다려야 한다.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