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 조작된 진실, 그리고 휘둘리는 대중, 본격적인 시작을 위해
그래서 전부터 한결같이 대중을 비판해 온 것이다. 하긴 대중의 탓은 아니다. 개인의 잘못이라 볼 수 없다. 창조론을 믿지 않는 이유다.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하다. 인간 자신이 믿는 이성조차 인간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단지 자신이 이성적이라 논리적이라 착각하고 있을 뿐.
한 걸음만 물러서면 된다.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살펴볼 수 있어도 된다. 사실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주제에 너무 정의롭다. 그리고 그 정의를 너무 쉽게 투사하고 싶어 한다. 정확히 마음놓고 폭력을 휘둘러도 되는 대상을 찾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거짓된 기사를 마치 사실처럼 반복해서 재생산하며 마침내 진실로 만들어버리는 대중의 집단지성이란 그냥 끔찍한 괴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끝끝내 자기가 틀렸을 가능성은 외면한 채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낸다. 어떤 결론을 내리기까지 분명 이유는 필요하겠지만 일단 결론을 내리고 나면 이유같은 건 더이상 필요치 않다.
언론의 역할이다. 하긴 원래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선동에 있었다. 소수의 뛰어난 지식인들이 대중을 이끌기 위해 언론이라는 수단을 이용했었다. 프랑스대혁명과 러시아혁명에서 수많은 대중의 동참을 이끌어낸 것도 바로 이들 언론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다. 언론의 본분은 사실의 전달이 아니다. 진실의 전파다. 진실은 사실이 아니다. 진실이라 믿고 싶은 것을 모두가 믿도록 만드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실도 필요했다. 대중이 믿고 싶은, 대중이 믿고자 하는, 대중이 믿을 수밖에 없는 사실들이 진실을 진실로 만든다. 그 역할을 바로 언론이 한다.
어느 특정한 한 언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몇몇 특정할 수 있는 언론들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이 언론의 보도를 수용하는 시민의 주체적 역할이다. 언론의 보도를 검증하고 비판하여 스스로 진실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성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말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원래 이성이란 것은 없다. 이성이란 단지 그런 것이 있기를 바라는 인간의 바람이 만든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실재하는지조차 확실치 않은 신처럼 인간의 믿음이 만들어낸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리 없다면서 언론을 탓하는 것이다. 자신은 이성적인데 언론의 보도가 잘못되어 - 아니 심지어 언론의 보도가 잘못되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조차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틀렸을 리 없다.
남강명(이원종 분)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남강명은 성형수술도 하지 않았었다. 사소한 정보의 조작만으로 모두의 오판을, 그리고 새로운 진실을 만들어낸다. 살아있었다 여겼던 남강명이 이제는 완전히 죽은 시체가 되어 사람들 앞에 공개된다. 남강명은 이제 죽었다. 언론의 역할과 무엇보다 그것을 수용하는 대중의 무책임함이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고 만다. 그것이 권력이다.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부른다. 권력이 원한다면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된다. 대중이 그렇게 만든다. 그나마도 대중 스스로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그렇게 조종하고 유인하는 것이다. 과연 그저 언론과 권력만의 잘못일까. 더구나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때로 민주주의라는 제도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되는 이유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시민이 주인이 되는 제도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시민을 찾기도 무척 어렵다. 주체이기보다 객체이고자 하고, 주인이기보다 손님이고자 한다. 차라리 누군가 더 잘난 존재가 자신을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다그치고 괴롭히는 것을 자신을 위한 선의라 이해한다. 고통을 쾌감으로 바꾸어 느낀다. 단지 먹음직한 미끼 하나만 던져준다면. 인간은 과연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
그래도 주인공답다 하겠다. 그 안에 알려진 모습과는 다른 남강명이 숨어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 남강명만 몰래 빠져나간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아직 남강명이 살아있음을 안다. 남강명을 대신해 죽은 희생자의 손목에 살인자의 그것과 같은 문신이 있었다. 남강명이 후원하던 고아원의 문양이었다. 과연 구태원(문성근 분)이 알아낸 컴퍼니의 진짜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남강명을 반드시 살려두어야만 하는 이유였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상 남강명이 저들의 손발이다. 저들이 적지 않은 수고와 위험부담마저 감수해가며 살려야만 했던 이유가 남강명에게 있었다. 구태원의 뒤에 조용기(류승수 분)의 뒤에 남강명이 있다. 그를 잡는다. 그를 세상으로 끄집어낸다. 그래도 낙관을 잊지 않는다. 정의와 진실이라는 환상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