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명불허전 - 어쩌면 마지막 숙제, 인간과 인간의 자격

까칠부 2017. 9. 24. 07:05

그래서 머리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다. 추상적 사고가 가능한 몇 안 되는 동물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이미 있었던 사실이나 자신이 지금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너무나 쉽게 지우고 비틀어 버린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이 단지 노숙자라서일까?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리는 인간들도 그러는 것을 일상에서 적잖이 보게 되는데.


마지막 시련이다. 시련은 모두 끝났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다. 인간의 자격에 대한 것이다. 흔히 하는 말이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격도 갖추지 못한 이들을 인간으로 대우할 필요가 있는가.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울 때 인간으로서 대우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들을 치료하며 돌봐준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었다. 자칫 죄인이 되어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에서조차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짓말로 자신들의 은인을 궁지로 내몰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실을 조작하기 위해서 저지른 서툰 행동이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하는 치명적인 실수로 이어지고 말았다. 하필 그를 치료해야 하는 것이 은인 최천술(윤주상 분)의 손녀 의사 최연경(김아중 분)이었다. 과연 자신의 할아버지를 은혜를 저버리고 죄인으로 몰아세운 그들을 최연경은 치료해야만 하는 것인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냥 인간으로 태어난 것 뿐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오로지 인간으로서 대우받아야 한다. 인간이 가지는 본질로써 그 존엄을 지키고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감정이 가리키는 바를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개인의 사익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사람을 매수하고 사실을 조작해가며 타인에 위해를 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의 악이다. 과거 조선에서도 현대의 대한민국에서도 그같은 악은 어디에나 흔히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도 당연히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의사는 그런 사람들까지 살려야 하는 것인가. 법이 그런 사람들까지 지켜주어야 하는 것인가. 시대를 초월한 물음이다. 하지만 지금가지의 글에서 그 답은 너무나 명확하다. 그리고 그것은 허임(김남길 분)이 과거 자신의 시대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되어 준다.


그곳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발달한 문명을, 그 가운데서도 고도로 성숙한 정신문명을 경험하며 더욱 간절히 느끼게 된다. 그곳에 자신이 치료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살려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자신만큼이나 가여운 사람들이다. 책임감이다. 동질감이다. 그보다는 사명감이다. 의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자신의 사명과 존엄을 깨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설사 최연경과 헤어지게 되더라도 그 시대로 돌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해야 한다.


각오한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다. 떠나야만 하는 사람이다. 당장 눈앞에 환자가 있으니 일단 살리고 본다. 의사이기에 무조건 환자를 살리기부터 하고 본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먼저 사랑부터 한다. 사랑하는 자신이 있으니 무조건 사랑부터 하고 본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고 살릴 수 있는데 살려서는 안되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헤어질 것이라고 사랑하고 있는데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살리고 사랑하고 그리고 후회없이 보내준다. 헤어진 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서로에게 솔직해진다. 민망할 정도로 서로에게 솔직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 사람은 이래서 사랑하는구나.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그 안에 숨은 비극마저 잠시 잊고 미뤄둔다.


아직은 끝날 때가 아닌 모양이다. 일단 마성태(김명곤 분)의 음모부터 해결해야만 한다. 또 하나의 숙제처럼 환자도 살려야 한다. 최천술의 병에 대해서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현대에 후회는 남기지 않는다. 다시 돌아오지 않기 위해 미련따위 남기지 않는다. 깔끔하게 지우고 비우고 그리고 오로지 한 가지만 남겨 설사 돌아오더라도 그 이유로 삼게 된다. 참 세상이 복잡하다. 인간이 복잡하다. 인연을 끊기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