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명불허전 - 해피엔드, 의사가 되어 살고 인간으로 돌아오다

까칠부 2017. 10. 2. 10:15

예상은 했다. 허준의 이름은 지금까지 전해지는데 허임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물론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다. 하지만 드라마 안에서 그것이 실재하는 사실임을 인정했을 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 뿐이다. 허임이 다시 현대로 돌아온다.


뻔히 결과를 예상하고 지켜보는 마지막회는 정말 지겨웠다. 어차피 이대로 영영 헤어지고 끝날 것이라면 이렇게 많은 분량을 남겨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헤어질 것인데 헤어지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끌고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헤어짐을 설명하고 그리워함을 설득하고 마침내 다시 만나게 될 이유를 만들어낸다. 오히려 임금과 세자의 병을 보살피는 어의가 됨으로써 허임이 조선으로 돌아가 이루고자 했던 사명은 끝나고 말았다. 허임이 조선으로 돌아간 것은 가진 것 없이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민초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지 소수의 특권자를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럴 것이면 굳이 조선으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대의란 명분에 우선하는 것이다. 혈연보다도, 인연이나 의리보다도, 신분이나 세상의 질서나 규범보다도 우선하는 것이어야 한다. 선비로써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가족을 돌보지 않아 굶어죽기도 하고, 나라를 되찾겠다며 객지를 떠도는 사이 가족들은 유리걸식하는 신세가 된다. 부모와 자식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데도 차라리 대의를 쫓아 육친이 희생되는 것을 지켜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있다. 의사로서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세상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의 생명이라는 가치를 위해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남들처럼 가질 것 다 가지고 누릴 것 다 누려서는 지킬 수 없는 것들이다. 차라리 그런 잔인함이다. 서로 헤어져 그리워하면서도 차마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의원으로서 자신이 살려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허임(김남길 분)이 사랑하는 최연경(김아중 분)을 놓아두고 과거 조선으로 돌아간 이유였다.


마지막 숙제를 풀었다. 가장 중요한 답을 내놓고 있었다. 의원이란 어떤 사람인가. 의원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후회없는 삶을 살았을 때 허준(엄효섭 분)의 말처럼 그에게 생각지 않았던 보상이 돌아온다. 지금까지는 의원으로서 살았으니 이제부터는 인간으로 살라는 뜻일까? 사실 현대에서 허임의 침술이 가지는 가치는 조선처럼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고보면 침통의 조화가 아니었으면 벌써 오래전에 죽었을 목숨이었다.


하여튼 드라마의 에필로그란 짧을수록 좋은 법이다. 모든 갈등이 끝나고 긴장마저 사라진 상태에서 나머지 이야기를 지켜본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그것이 남의 사랑이야기라면 더더욱. 하지만 주제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의사가 되어 살았고 인간으로서 돌아왔다. 수미일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