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독 - 차준규의 의도와 조한우의 배신
반전이라기에는 너무 예상대로였다. 그래서 오히려 더 반전을 바랐는지 모르겠다. 마지막까지 최강우(유지태 분)와의 우정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아무리 아들이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있다고, 그러니까 나름대로 절박한 사정을 가지고 있다고 이렇게 쉽게 유혹에 넘어가 등돌리는 것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조한우(이준혁 분)의 배신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말 그대로였다. 하필 아들이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돈도 돈이거니와 아쉽고 필요한 것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최강우의 일이라면 자기가 먼저 발벗고 나서서 도우려 하고 있다. 우정이 아주 깊거나 아니면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거나. 차준규(정보석 분)가 따로 최강우와 관련해서 정보를 얻는 루트가 있었다. 하지만 설마 그렇게 뻔하게 설정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효과 역시 확실했다. 그만큼 그동안 충실한 친구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차준규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고 주현기(최원영 분)가 감추고 있는 것이 있다. 두 가지는 모두 2년 전 '주한항공 801편 사고'와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당시 사고의 충격으로 주현기의 아버지이자 굴지의 JH그룹의 회장이 쓰러져서 바로 숨을 거둔 듯 보인다. 아마도 주현기의 경영권승계를 위해서 그 죽음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살아있는 것처럼 꾸며서 은밀하게 승계작업을 계속해왔던 것이다. 이제 다음주면 회장의 죽음과 더불어 주현기의 경영권 승계를 공식화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라기에는 그동안 주현기와 손잡고 그를 도아왔던 차준규의 속내가 부쩍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차홍주(홍수현 분)의 말처럼 과연 차준규가 태양생명의 회장 자리를 내놓고 어디로 가려 하는 것이겠는가. 설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골로 가서 좋아하는 정원이나 가꾸며 소일하며 지내기에는 그동안 보여온 차준규의 캐릭터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차준규의 사람임이 분명한 JH그룹의 법무팀장 이영호(정진 분)가 차준규의 사람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JH그룹의 사람임을 강조하는 것도 상당히 수상쩍다. 어차피 충분힌 지분과 주주들의 지지만 있으면 누구라도 앉을 수 있는 것이 기업의 최고경영자 자리다. 아버지가 회장이었다고 아들이 회장자리를 당연하게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었다면 현실의 많은 기업들이 자식에게, 혹은 손자에게 기업을 물려주려 그리 복잡하고 위험한 수단들을 동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주현기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아직까지 차준규를 조심스럽게 만든다. 막다른 상황이 오면 바로 터뜨릴 수 있다. 차준규의 사람인 이영호 앞에서 주현기는 그렇게 협박한다.
차준규가 뻔히 최강우의 의도를 알면서도 속아넘어간 척 받아들여 태양생명의 보험조사팀장에 앉힌 이유였다. 사냥개였다. 2년 전 801편 사고의 진실을 쫓는 최강우를 이용해서 당사자 가운데 하나인 주현기가 가지고 있는 단서들을 빼돌리도록 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 과정에서 함께 가지고 나오게 될 그 '무엇'을 계속해서 가까이 두고 감시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매드독팀과 함께 제거하고 자신이 되찾는다. 차홍주에게도 그래서 사냥개를 잡을 준비를 하라 지시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차홍주가 태양생명의 전무로써 자신의 딸로써 최강우를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최강우도 그런 의도를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는 듯하다.
또 하나 페이크였다. 이미란은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사고의 원흉으로 지목된 부기장 김범준의 보험증서 원본을 봐야 한다 말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보험증서가 위조된 사실은 알았다. 그것이 당시 사고와 관련해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주현기가 감추고 있는 그것이 당시 위조된 보험증서의 진짜 원본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찾으려 장하리(류화영 분)와 김민준(우도환 분)이 주현기의 집에 숨어들었을 때 장하리를 의심해서 금고를 살피던 주현기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금고가 아닌 금고 위를 손으로 더듬고 있었다. 진짜는 그곳에 숨겨져 있다. 물론 시청자는 알지만 드라마속 누구도 주현기를 제외하고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2년 전 사고와 관계되어 있으면서 주현기와 차준규 두 사람을 그동안 협력관계로 묶어왔던 매개였을 것이다. 더불어 차준규의 야망을 한 번에 좌절시킬 수 있는 무척이나 치명적인 것일 터였다. 그 사실을 알고 차홍주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그녀의 오랜 순정은 과연 가족의 정과 현실의 욕망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일까? 무엇보다 그를 통해 마주하게 될 2년 전 사고의 진실은 무엇일까?
상당히 사족이 많아 보였다. 나름 중요하기는 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식으로 장차 변화하고 발전해 갈 것인가. 드라마란 사람의 이야기고, 캐릭터란 관계의 산물이다. 하지만 덕분에 사건의 선명함과 날카로움이 디테일의 바다에 잠긴다. 정도의 문제기는 하다. 공중파 드라마다. 납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