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알쓸신잡 - 예능에서 교양으로, 상실감의 이유

까칠부 2017. 11. 12. 09:42

원래 수다의 재미는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의외성에 있다. 아마 시즌1때도 매번 리뷰를 쓸 때마다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고 전혀 계산되지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전혀 엉뚱한 곳에서 헤매는 동안에도 여전히 꿋꿋이 대화는 이어진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깊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 이야기나 해도 된다. 아무때나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모두 받아준다. 하지만 이번엔 유희열의 분량이 너무 크다.


분명 시즌1에서 유희열은 간간히 수다에 끼어들기도 했지만 거의 청자의 위치에 있었다. 간간히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으며 자기가 아는 것이 있으면 맞장구치고 시청자를 대신해서 다양한 리액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진행이라는 것이 없었다. 유희열이 나서지 않아도-아니 그럴 새도 없이 출연자들이 알아서 새로운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고 그런 의식조차 없이 전혀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말이 되고 깊이까지 있다는 것이 모두를 감탄케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두서업고 중심도 없고 중구난방인데 그런데도 내용에 알맹이가 있구나. 그냥 남자의 수다인데 듣고 배울 것이 있다.


하지만 시즌2는 아니다. 아마 시즌1의 팬들이 시즌2의 새로운 출연자들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이유였을 것이다. 너무 기존의 주제에 구애된다. 그보다는 너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 굳이 판을 깔아주지 않으면 먼저 들어오지도 않고, 기껏 한 마디 하면서도 대화의 주제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남자들의 수다라는 시즌1의 예능에서 지식인들의 대화라는 교양으로 바뀌어 버린 느낌이다. 심지어 이번회차는 진도에 대한 유시민의 시사적인 감상까지 더해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 일상에 더 피곤한 내용이 되어 버렸다. 차라리 백수였다면 즐겁게 볼 수 있었을 테지만 일로 지친 상황에서 보기에는 내 현실도 그리 썩 유쾌하지만 않다. 사람들이 예능을 보는 이유는 지식과 교양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의 활력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시청률이 전처럼 나오지 않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 3주 동안 침묵하고 있었다. 뭐가 문제일까? 왜 이리 지겹고 지루하기만 한 것일까? 내가 그 안에 있었어야 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긴장감과 전혀 엉뚱한 곳에 와있다는 당혹감과 그럼에도 여전히 머릿속을 씻어주는 듯한 지적 쾌감에 즐거워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계산되고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을 때 아무린 긴장도 당혹감도 그만큼 쾌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식은 책을 읽으면 된다. 강연을 들으면 된다. 사람들이 알쓸신잡에 기대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게다.


이번주는 중간에 보다 말았다. 다음주는 조금 더 나아질까? 사전에 촬영을 다 끝낸 상태인 것 같다는 점이 걸린다. 아니라면 한 마디 조언이라도 해 줄 수 있을 텐데. 조금 더 뻔뻔해져야 하고 조금 더 무례해져야 한다. 친구 사이에는 예의를 갖추는 것이 아니다. 수다는 예의와 격식을 갖춰가며 떠드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더 좋은 사람들도 분명 있기는 할 것이다. 당연히 나는 아니지만. 실망이 크다. 상실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