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기사 - 어쩌면 흔하고 뻔한, 그러나 멋진 주연들의 매력
차라리 전생이 아니었다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이제 전생은 너무 흔하다. 원래 그리 흔한 소재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몇 번의 반복만으로도 너무나 쉽게 질리고 만다. 아무라도 현실에서 실제 겪을 수 있을 일상의 소재와 드라마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비일상의 소재가 가지는 차이다. 뻔한 일상이야 뻔하게 반복되더라도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볼 수 있겠지만 흔하지 않은 일상이 반복되면 그 자체로 모순이 된다.
신세경(정해라 역)은 약간 울상에 궁상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가난하고 억울한 역할이 많이 어울렸다. 내가 가장 인상깊게 봤던 드라마의 배역들이 항상 그런 스타일이었다. 역시나 세월의 힘일까? 아니면 메이크업이 바뀌어서 그런 걸까? 여전히 지지리 궁상인데 전과 달리 맺힌 것 없이 말끔한 느낌을 준다. 세련되고 귀한 느낌을 준다. 망했지만 한때 잘나가는 기업 사장의 외동딸이라는 설정과도 어울린다. 역시 드라마는 여주인공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남자놈들이야 뭐...
김래원(마수호 역)이구나.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다. 첫 회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 드라마에서도 이야기의 중심은 여주인공인 정해라다. 원래 동화속 왕자님은 하는 일 없이 그냥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다. 왕자는 왕자인 것으로 충분하다. 왕자와 만날 인연을 운명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비천한 신분의 여주인공들의 몫이다. 비참할 정도로 발악하며 발버둥치는 사이 어느새 인연이, 운명이 구원으로 자신을 인도해준다. 차라리 어느 소녀의 성냥처럼 정해라는 그곳 벤치에서 추위에 떨며 꿈을 꾸는 것일 수 있다.
어쩐지 뻔히 이후의 전개와 결말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그러나 그럼에도 끝까지 지켜보고 싶은 것은 김래원과 신세경이라는 멋진 배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설정 같은 이야기라도 캐릭터가 다르고 배우가 다르면 전혀 다른 내용이 된다. 일단 눈으로 보기에 즐겁다. 그것이 중요하다. 일상의 고단함을 잊는 모니터 너머의 꿈이다. 우연이 인연을 만든다. 모르는 운명이 그들을 만나게 한다.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