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랑하는 사이 - 고작 48명이라는 무심한 잔인함
누군가는 말한다. 다 지난 일이라고. 어떤 이들은 꾸짖기도 한다.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이러고 있느냐고. 정작 당사자들은 아직도 그때를 살고 있는데.
고작이라 말한다. 고작 48명이라고. 그런데 그 고작 속에 자신의 여동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지금도 부모나 자신 모두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서로 보면 아프고 아프게 할 것 같기에 차라리 떨어져 산다. 무심코 내뱉는 한 마디마다 날서린 원망이 섞여 있다. 갈 곳을 일은 절망이 서로를 자신을 할퀴고 또 할퀸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것을 고작이라 말하고 있다.
누가 기억하겠는가. 어차피 벌써 모두 잊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난다. 고작 304명이 죽은 세월호를 떠올리게 된다. 공식 사망자만 고작 502명이던 삼풍백화점 붕괴를 모델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통속에 사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주위에서 무심히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와 겹치며 그저 시리기만 하다. 유가족들에게 보상금을 말하고, 그만할 것을 강요하고, 태연히 모욕주던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당당히 그렇게 주장할 수 있었던 정치인과 언론과 대중들 속에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채널이 JTBC인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아니 하문수(원진아 분)의 아버지 하동철(안내상 분)이 무심코 켠 TV뉴스가 JTBC의 뉴스룸인 것도 단순히 드라마를 JTBC에서 방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유일하게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편에서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해왔던 방송이었다. 뉴스였다. 어떤 이들은 잊었겠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잊은 것조차 죄스러워하고 있다. 더 많이 함께 아파해주지 못했음을. 더 오래 그들과 함께해주지 못했음을. 이제 그만하라는 세상과도 함께 싸워주었어야 했는데.
주연인 원진아를 보면서 내내 수애를 떠올렸다. 특히 살짝 내리까는 쌍꺼풀없는 눈과 목소리가 수애와 쏙 빼닮았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허름한 일상과 전문가적인 엄정함이 소녀적인 수수함으로 수렴한다. 이준호(이강두 역)는 이제 배우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는 듯. 다만 연기의 스타일이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점은 한계로 여겨질 수 있다. 하긴 같은 패턴이라도 그만큼 매력과 완성도가 높으면 자기만의 개성이 된다. 울지 않으며 울 것 같은 상처를 연기하는 두 주연의 모습에 더욱 깊이 이끌리고 만다.
이제 겨우 시작인 관계로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판단보류. JTBC드라마 가운데 끝까지 재미있었던 경우가 거의 없어서. 아, '청춘시대'가 있었던가? 한 가지 덧붙이자면 주위에 가족이 저런 식으로 술에 의지해 살고 있다면 먼저 병원부터 데려가자. 이미 알콜중독이다. 술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는 사정을 동정하다가 자칫 가족을 잃을 수 있다.
고작 48명이라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이강두가 공사장에서 위령비를 해머로 내리치는 이유도 그와 관계있을 것이다. 겨우 시작이긴 하다.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