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 그냥 사랑만 하는 무게와 어려움

까칠부 2017. 12. 20. 06:53

그냥 사랑만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얼마나 많은가. 사랑만으로 부족하고 사랑보다 더 절실한 이유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제목이 '그냥 사랑하는 사이'였던 모양이다.


컴플렉스가 아닌 현실 그 자체다.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없고 그래서 내세울 것도 없다. 자꾸 주눅들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자기가 자기에게 상처입고 만다. 하물며 여전히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과거의 기억이 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끝없이 자신을 수렁으로 잡아끄는 것 같다.


이강두(이준호 분)가 감춰왔던 과거의 편린이 드러난다. 차라리 학대였다. 차라리 징벌이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자신을 내굴리며 살아왔던 것이었다. 더 초라하도록. 더 비참하도록. 더 고통스럽고 더 절망스럽도록. 그럼에도 살아야 했고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속죄조차 할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죄와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기에 그 죄로부터 벗어날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대가로 치러아 자신의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하문수(원진아 분)에게도 죽은 동생은 족쇄였다. 자신이 지켰어야 했다. 자신이 곁에서 지켜주었어야 했다. 그 순간 자신은 동생의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사고의 순간 동생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생은 죽고 자기 혼자만 살아남았다.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여전히 엄마(윤유선 분)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부모의 관계마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내 죄다. 내 잘못이다. 이강두가 제대로 보았는지 모르겠다. 존재 자체가 고통인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자신에게 지워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닌, 가족으로서의 책임감이 아닌, 죄지은 자의 부채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사고 당시의 기억을 잊은 탓에 하문수는 현실에 굳게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었다. 과거를 잊은 대신 자신이 갚아야 할 빚이 현실로 바로 보이고 들리는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때 그 사람이 살아서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살아서 자기에게 아무거라도 갚을 것을 요구하고 있었더라면. 그럼에도 현실을 살며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하문수가 눈부시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일 수 있는 하문수가 너무나 눈부시도록 빛나고 있다. 아직 이강두는 그때로부터 단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강두가 넘어야 할 벽이다. 사고 자체가 아니다.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들에 대한 분노도 아니다. 사고로 인해 엉망으로 망가진 자신이나 자신의 삶도 아니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죄이고 그렇게 학대하며 살아온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다. 그래서 때로 하문수를 괴롭히고 자신과 같은 고통속에 뒹굴게 하고픈 욕망마저 느낀다. 그것을 알기에 스스로 자신을 다잡는다. 자기는 하문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부터가 진짜 이야기다. 어떻게 이강두는 자신의 오랜 족쇄를, 열등감을 딛고 자신의 감정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삶과 진실과 행복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인가.


이강두가 자신이 부순 비석을 하문수와 다시 세우게 된 이유였을지 모른다. 당사자인 자신과 다른 타인의 해석을 듣는다. 당사자이기에 알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어째서 사람들은 희생자의 이름을 새기고 비석을 세우는 것인가. 자신들만의 고통에서 벗어나 비로소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정확히 이강두가 자신의 동굴속에서 벗어나 세상과 마주하며 자신을 되찾게 된다.


벌써 두 사람의 사이는 결정된 듯 보인다. 자연스럽게 의식하고 의식하지 않으며 서로를 대한다. 하문수가 어느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솔직한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상대다. 이강두야 한참 전부터 하문수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녀와의 접점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와 거리를 두려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자유로운 하문수가 이제는 역전되어 더 적극적이 되어 간다. 더 스스럼없어진다.


노력하면 결과가 있고 나쁜 놈들은 반드시 벌받는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이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사람의 손이, 사람의 체온이 사람의 마음까지 치유할 수 있다. 흔한 무협소설에 대한 작가의 이해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무협소설의 추궁과혈을 그렇게도 응용할 수 있는 것이구나. 딸의 체온이 엄마의 상처를 다독이며 녹여준다. 무협소설을 읽으며 손으로 동작을 취해 보이는 하문수는 무척 귀여워 보였지만.


사고의 원인에 대한 단서가 드러난다. 누군가 자재를 빼돌린 사람이 있다. 이강두의 아버지가 사고로 죽고 그 책임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사실 너무 당연하다. 설계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잘못된 것은 공사과정일 터였다. 하긴 지금까지 등장인물 가운데 악역으로 어울리는 인물은 한 사람 뿐이다.


뒤늦게 의미심장하게 읽히는 제목이다. 쉬운 말이다. 그러나 어려운 말이기도 한다. 그냥 사랑한다. 그냥 사랑만 한다. 그럴 수만 없는 현실이 수없이 허구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드라마의 이유다.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