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 - 드라마가 잊고 있는 것

까칠부 2017. 12. 30. 10:48

정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비상의 인물들이 모여 해결하는 이야기는 의외로 오래되었다. 실제 역사상 그런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몽골군을 상대로 몇 번이나 큰 승리를 거두었던 금의 완안진화상이 몽골군의 포로였다가 도망친 이들로 구성된 충용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전세가 불리하거나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경우 사면을 조건으로 죄수들을 동원한 예도 상당했었다. 그것을 아예 공식화한 것이 프랑스의 외인부대다. 출신도 과거도 묻지 않고 고용하여 병사로 삼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창작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개개인의 출신과 과거일 터였다. 실제 외인부대를 소재로 쓰여진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도 그것은 한결같이 적용된다. 오히려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에 더 궁금해지고 각자가 감추고 있는 사연들이 중요한 소재이자 주제로 등장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죄를 짓고 도망친 살인자이고, 그와 전우인 누군가는 그에게 살해당한 희생자의 가족이거나 연인이고. 그런 만큼 정상적으로 한 곳에 모일 리 없는 사람들을 모아놓는 장치로 쓰여지기도 한다. 아프리카인과 유럽인과 아시아인이 함께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전직 나치와 유대인과 공산주의자가 파렴치한 연쇄강간범과 함께 팀을 이루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바로 그것이 매력이다.


'나쁜녀석들'도 원래는 그런 류에 속하고 있었다. 전체 줄거리 자체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사회와 격리된 범죄자로 이루어진 구성원 개인의 캐릭터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한 사람은 전문킬러였고, 한 사람은 조직폭력배였으며, 한 사람은 지능적인 사이코패스였었다. 각자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 만큼이나 가지고 있는 탁월한 능력으로 범죄자인 자신들보다 더 용서할 수 없는 흉악한 범죄를 수사하는데 동원되고 있다. 아직 감춰진 각각의 사정과 사연들이 이야기의 전개와 함께 조금씩 흘러나오기도 한다. 바로 이런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들이 서로 다른 개성과 능력을 가지고 모여 팀을 이루어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매력이 또한 시청자로 하여금 드라마에 몰입하는 동기가 되어 주기도 한다. 매력적인 인물들의 동선을 쫓으며 동시에 자연스럽게 드라마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서 캐릭터일 것이다.


'나쁜녀석들:악의 도시'를 보면서 시즌1보다 더 크게 실망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조영국(김홍파 분)가 나쁜 놈인 것은 알겠다. 시장인 배상도(송영창 분)와 손잡고 서원시를 음으로 양으로 지배하며 온갖 나쁜 짓들을 저질러 왔고, 그래서 검찰에서도 주변을 떠돌던 우제문(박중훈 분)을 중심으로 특수팀을 꾸려서 비상적인 방법으로 그를 수사하려는 이유 역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조영국 같은 특별하게 나쁜 놈을 수사해야 할 우제문의 특수팀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하는 당연한 질문일 것이다. 검찰마저 우습게 농락하는 교활하고 흉악한 범죄자를 상대하는데 그 조직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어 막연한 기대나마 가지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제문 외에 노진평(김무열 분), 장성철(양익준 분), 한강주(지수 분), 허일후(주진모 분) 등 구성원 개인에게 어떤 재능과 능력이 있어서 조영국과 같은 하나의 도시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범죄자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상 없었다. 아니 아예 없었다. 장성철의 똘기나 허일후의 싸움실력은 액션신에 그냥 묻혀 버리고 노진평이 가졌다는 서류조작능력은 아예 한 번도 보여준 바 없었다. 오로지 리더인 우제문과 조영국 사이의 머리싸움이 지금까지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제문이 조영국에게 머리싸움을 걸면 조영국은 자신이 가진 힘으로 그것을 굴복시키는 것이 딱 4회까지의 내용이었다. 그나마 능력을 보여준 우제문조차 조영국이 가진 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우제문이 시키는대로 따를 뿐인 수사팀의 능력은 조영국이 가진 힘에 비하면 미미할 뿐이다. 그나마 압도적인 무력의 동방파와 싸워서 버틸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래도 주인공이기는 하구나 느끼는 정도다. 그러니까 수사팀 가운데 누가 어떤 능력을 발휘해서 저 강고해 보이는 조영국을 허물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그런 능력과 가능성이 숨겨져 있는가.


캐릭터가 없다. 팀은 있는데 팀원이 없다. 중요인물처럼 등장한 노진평은 아예 4회가 다가도록 혼자서 고민하며 방황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팀은 희망이라고는 없이 여전히 조영국이 가진 힘에 일방적으로 농락당하고 있을 뿐이고. 당장은 지더라도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 이런 팀의 구성과 능력이라면 언젠가는 조영국에게 한 방 크게 먹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럴 것이면 굳이 수사팀을 따로 꾸릴 필요도 없었다. '나쁜녀석들'이라는 제목을 붙일 이유도 없었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검사 황시목은 단지 한여진과만 팀을 이루었을 뿐이었다. 검사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 그리고 자신이 가진 능력이 그가 사용한 모든 것이었다. 팀을 이루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5회를 볼까... 그러나 도저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포기하기로 했다. 기대할 것도 없는데 억지로 보고 스트레스받는 것도 내 취미와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다.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왜 이렇게 재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다고 우제문에게 남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박중훈의 연기는 TV드라마와는 맞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더 재미있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보여주지 못한 각자의 개성과 매력이 점차 이야기가 진행되며 드러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지 무엇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볼 것인가 하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지금 당장 드라마에는 무엇이 있어 나로 하여금 보게 하는가. 괜히 영화나 드라마들이 초반에 임팩트로 승부를 보는 게 아니다.


이런 종류의 드라마들이 대개 초반 옴니버스 구성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거나, 아니면 의도와 상관없이 '나쁜녀석들'이라는 제목에 지레 구애되었거나. 노진평의 경우는 차라리 사족에 가까웠다. 없어도 상관없는, 있으면 그저 답답해지기만 하는 인물이 너무 전면에 나와 있었다. 시청자를 설득하려면 이유를 들려주어야 한다. 이유 없이 혼자서 달려가면 시청자는 관객으로만 남겨진다. 시청률은 당장 높으니 별 상관은 없겠지만. 재미없다.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