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 슬픔을 넘어서는 과정

까칠부 2018. 1. 16. 06:59

이영훈이 작곡한 이문세의 노래 '옛사랑'에 그런 가사가 있다.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사랑이 그런데 슬픔은 아닐까? 아픔은 아닐까? 괴롭고 힘들고 화나고 미운 감정은 아닐까?


그래서 카타르시스다. 마음껏 울고 마음껏 슬퍼하며 그리고 잊는다. 지칠 때까지 울고 지칠 때까지 슬퍼하며 그리고 잊는다. 내가 왜 울었고 슬퍼했는가까지.


마음껏 울지 못하면 병이 된다. 마음껏 슬퍼하고 아파하지 못하면 그것이 멍울져 평생 상처로 남는다. 후회하며 미련을 남기며 영영 그로부터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니까 울어야 한다. 그러니까 슬퍼해야 한다.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야 한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나면 조금은 나아질 테니까.


어쩌면 이강두(이준호 분)가 그동안 먹어온 진통제의 정체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마마(나문희 분) 역시 그에게 다른 진통제를 처방했던 것일 테고. 뜻밖의 반전이었다. 살아있던 것이 아니었다. 버리고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함께 있었다. 죽어서까지 시체로 계속 곁에 함께 있었다. 그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그 마지막을 온전히 보내주지 못했다. 살았다는 상처처럼. 아직 살아남았다는 고통처럼.


그냥 도망쳤던 것이었다. 애써 잊으려 발버둥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차마 마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 이강두만 한 마디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문수(원진아 분)가 돌아온다. 돌아와서 그의 곁에 있어준다. 그의 손을 잡아준다. 마음껏 슬퍼하며 울어도 무너지지 않게 그 곁을 지켜줄 수 있도록. 


이번에는 도망치지 말아야 한다. 숨지도 말아야 한다. 마마가 남긴 유언의 진짜 의미일 것이다. 도망치고 숨어서는 스스로 행복해질 수 없다. 부딪히고 그것을 넘어야 비로소 행복으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다. 끝내 좌절하고 절망해도 그러나 한 걸음 떼어놓았다는 사실은 남는다. 사랑하기 위해서도. 그냥 사랑만 하기 위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로 사랑할 수는 없다.


의외로 이강두의 코피는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꺾이면 너무 억울해진다. 그보다 너무 흔해진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흔치 않다.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 앞으로 나갈 용기가 있는 사람도 흔치 않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숨고 도망치고 그렇게 적당히 그런 자신에 맞추며 살아간다. 죽는 것은 차라리 쉽다. 어떻게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어떤 자신으로 살아남는가.


어떻게든 자기를 이기려 사람들은 필사적이다. 서주원(이기우 분)도, 정유진(강한나 분)도, 정유택(태인호 분)도 모두가. 단지 방법이 다를 뿐이다. 더 용감하고 더 비겁하고 더 비루하고 더 나약하고. 그렇게 사람들은 살아간다. 마마의 지난 세월 역시 그런 시간들의 흔적일 것이다.


사랑하고 혹은 사랑받고 사랑받고 혹은 사랑하면서. 단 한 사람이면 된다. 내가 기댈 수 있는. 나에게 기댈 수 있는. 가장 아프고 힘들 때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있어주었으면 하는.


슬픔을 이기기까지의 과정이 차라리 담담해서 더 먹먹하게 그려진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지워진 부채다. 살아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가운데 살아남았던 그들처럼. 그래도 그들은 살아간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라는 의미. 매회 볼 때마다 그 간절한 의미를 되새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 당연하면서도 간절한 바람에 대해서.


잊는다. 묻는다. 뛰어넘는다. 그리고 앞으로 나간다. 결코 쉽지 않은, 많은 이들이 포기하고 마는 그것에 대해서. 그래서 사람에게는 꿈이란 것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거짓일지라도 환상일지라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은 손을 잡는다. 먼 시간과 거리를 돌아서. 겨우 또 한 걸음이다. 무척 힘겨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