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 만나서 다행이야!

까칠부 2018. 1. 17. 09:51

난 참 사람이 못됐다. 그리 행복해졌으면 싶더니 막상 꿀을 뿌려대는 모습을 보니 확 짜증이 밀려든다.


"아주 귀여우느라 수고가 많다구!!"


어쩌면 행복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닌지 모른다. 별 것 아닌 그저 대수롭지 않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럼에도 그 앞에서 주저앉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지.


내내 했던 이야기다. 그냥 사랑만 하면 되는 사이다. 그냥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사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 어렵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수많은 사랑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끝내 어렵게 사랑을 이루거나 그 앞에서 좌절하고 마는 이야기들이다.


그냥 잠시 웃을 수 있으면 그만인데. 그저 잠시 좋은 일만 생각하며 웃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인데. 그러기가 너무 어렵다. 그 쉽고 간단한 일이 너무 힘들기만 하다. 그래서 때로 시작도 하기 전에 주저앉고 만다. 어차피 안될 것이라. 어차피 자기는 안 될 것이라. 


자기는 아프니까. 자기는 남들과 다르니까. 그러니까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마마(나문희 분)는 이강두(이준호 분)에게 적지 않은 재산을 물려주었던 것이었다. 이강두에게 간절한 그 기회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다시 하문수(원진아 분)가 있는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동안 자신을 옭죄던 빚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하문수 앞에서 멋진 차림으로 작은 사치도 부려 볼 수 있었다. 자신감이다. 불을 피우려면 불씨가 필요하듯 이강두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은 최소한의 무언가가 주어진 것이었다.


물론 시작은 하문수였다. 하문수의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지레 겁먹고 도망치다가도 똑바로 자신을 바라봐주는 하문수의 모습에 한 번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결심도 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강두에게는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을 지탱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 남자로서 하문수를 온전히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비로소 결심이 섰을 때 그를 위한 최소한의 무언가가 주어졌다. 멋지게 돌아와서 하문수의 곁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비로소 자신의 고통과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기대 오던 약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려 한다.


별 것 아닌 것들.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들. 그런 일상들.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들. 그냥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모습들이. 그런데도 그런 너무 당연한 것들이 너무 힘든 현실들이. 아직 마음껏 울지 못했고, 마음껏 아프지 못했고, 마음껏 잊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지난 일로 흘려보내기에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다. 사랑으로 인한 상처이기에 쉬이 낫지도 않는다. 딸이 즐겁고 행복한 모습에도 어머니는 눈물을 지어야 하고, 어느새 잊혀지는 기억들에 남은 사람들을 서러움도 삼켜야 한다. 이강두 역시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기억을 비틀어 여전히 고통속에 살고 있다. 누구 때문에?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강두의 아버지가 남겼다는 일기가 하문수에게로 건네진다. 어쩌면 사고의 원인에 대한 단서가 그 안에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그들이 행복해지고 행복해지지 못하는 그 이유만큼이나 별 것 아닌 이유가 그 끔찍한 비극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서주원의 말은 마치 주문처럼 저주처럼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설계자를 찾아가 원망을 쏟아낸 것을 결코 잘못이라 할 수 없을 것임에도. 피해자가 가해자를 원망하는 것은 또다른 가해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는 발버둥이다.


어쩌면 현실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교통사고를 냈으면 최소한의 치료비라도 보상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뜯겼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때린 것은 생각않고 맞은 것만을 생각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찾아가서 원망을 쏟아내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냥 자기 멋대로 단정짓고 찾아간 것도 아니고 공식적으로 그렇게 발표가 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아들이기에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하문수의 무심한 원망에도 자신의 태도를 바꾸고 만다. 인간의 이기심일까? 아니면 나약함일까? 정유택(태인호 분)과 서주원의 차이를 도저히 모르겠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감당해 본 적 없는 치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정유진(강한나 분)은 그들보다는 조금 더 어른으로 여겨진다.


뜻밖에 반전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 하문수와 이강두 사이에 남은 고난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은 분량이 불안하다. 그렇지 않아도 추운 겨울 전기장판에 의지해 드라마나 보고 있는 신세를 제대로 염장지르는 모습에 더 화나고 짜증나야 하는데. 그보다 더 화나고 짜증나는 것은 행복해야 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것이다. 행복해져야 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냥 행복해지면 되는 것일 텐데.


겨우 길을 찾았다. 겨우 자신들의 길을 자신들의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작가가 악취미거나, 아니면 세상 자체가 악취미거나. 원진아는 예쁘다. 사실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가장 첫째 이유였다. 갈수록 표정들이 예뻐진다. 어둡지만 그래도 웃을 때 드라마는 화사해진다. 기분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