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가장 필요한 그것

까칠부 2018. 1. 23. 10:12

살아가면서 너무 중요하고 절실하지만 그러나 누구도 어디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있다. 오만 쓸데없는 것들은 우겨넣듯 이것저것 억지로 가르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든 학교든 사회는 그냥 지나칠 뿐이다. 어떻게 아파해야 하는지. 얼마나 아파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아픔을 딛고 슬픔을 이길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상처를 보듬고 견디며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지.


하긴 부모들도 모른다. 학교 선생님들도 모른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닥치기 전까지는 자기에게 그런 슬프고 아픈 일들이 일어날 것을 거의 생각지 못한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하며 노력한다. 그래서 삶이란 치열한 것이다. 아프지 않기 위해. 슬프지 않기 위해. 괴롭지 않기 위해. 그러니까 항상 행복하게 웃으며 살기 위해서. 대부분 부모들은 자식들이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란다. 대부분 학교 선생님들도 제자들이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니 슬픔을 이기고 아픔을 견디는 방법따위 가르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강해져라. 영리해져라. 현명해져라.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해져도 도저히 견딜 수 있는 슬픔이 있고, 아무리 지식이 많고 지혜가 뛰어나도 피해갈 수 없는 아픔이라는 것이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강자들조차 한 가지씩 인간적인 약점이 있었고, 모두로부터 추앙받는 현자들 또한 자신조차 모르는 후회를 남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오히려 강해야 하기 때문에. 영리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아픔을 견디지 못하는 자신이 못나고 한심해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슬퍼하고 아파하는 자신으로 인해 더 고통받고 더 상처입기도 한다.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어느 정도 이겨낸 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래 보였을 뿐이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조그만 계기로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혼자서 덧나고 곪아 그대로 터져나오고 만다. 자신의 슬픔을, 아픔을 주체하지 못해 주위를 물들이고 주위마저 상처입히며 그로 인해 더 깊은 상처를 입고 만다. 자기로 인해 상처받는 상대를 보면서. 그렇게 상대를 상처입히는 자신을 깨닫고 다시 상처받는 자신을 느끼면서. 그래서 참아야지. 그래서 이겨야지. 그래서 견뎌야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속엣말을 쏟아내고 만다. 그것이 뻔히 엄마에게, 아내에게, 남편에게 상처가 될 것을 알면서도. 어쩌면 그들이 지금보다 더 강했고 더 영리했고 더 현명했다면 아무 상처없이, 아픔이나 슬픔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올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이제 그만하라. 그만 슬퍼하고 아파하라. 그만 잊으라. 세상은 너무 무심하다.


이강두(이준호 분)와 하문수(원진아 분) 두 연인의 달달함이 그들을 에워싼 현실의 답답함과 정면으로 대비된다. 그들이 잠시 꾸었던 그날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자신들이 누릴 수 있었을 현재의 꿈과도 같을 것이다.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즐거워 할 수 있는데. 하지만 치유되지 않은 상처에 다시 비명을 지르고 지레 그 비명에 놀라 다시 자기를 상처입히고 만다. 무심코 잊고 있던 원망을 쏟아내고, 전혀 아무런 악의없이 상처가 될 말들을 토해낸다. 그렇게라도 서로를 상처입혀야 자신이 살 수 있다. 상처를 헤집고 피를 보아야 자기가 견딜 수 있다. 누가,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러니까 이렇게나 행복해질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강요로 인해 꿈을 꺾어야 했고, 집안의 사정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속여야 함을 알았고, 여러 주변의 사정들에 떠밀려 어느새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 하나씩 아픔을 남기고. 슬픔을 남기고. 후회와 미련을 남기면서. 다만 그것들을 어떻게 견디는가. 어떻게 이기고 살아가는가. 죽은 마마(나문희 분)는 그런 여러 답 가운데 하나인지 모른다. 누구보다 힘들고 아픈 삶을 살았으면서도 그녀는 끝내 강했고 행복할 수 있었다. 잊어서가 아니다. 억지로 견디려 해서가 아니다. 끝내 자신의 지난 기억들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런다고 사람이 행복해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껏 울어라. 하문수가 이강두에게 했던 말이었다. 마음껏 기대서 펑펑 울라고. 마음껏 아파하고 마음껏 슬퍼하라고. 더이상 아프지 않을 때까지. 더이상 슬프지 않을 때까지. 여전히 아프고 슬프다면 그대로 내버려두면 된다. 아프고 슬픈대로 그 위에 새롭게 행복을 쌓아가면 된다. 땅이 젖어도 눈이 내리다 보면 어느새 하얗게 쌓이기 시작한다. 말이 그렇다는 말이다. 어쩌다가 자신도 모르게 자다가 답답해서 깨곤 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니까.


그래서 '그냥'이라는 말이 너무도 사무치듯 느껴진다. 그냥. 그러고보면 나도 흔히 쉽게 쓰는 말이다. 아무렇지 않게. 그저 대수롭지 않게. 별다른 의미 없이. 그러니까 그냥. 그냥. 그냥. 그냥 사랑하고 그냥 미워하고 그냥 원망하고 그냥 화내고 그냥 웃고 그냥 울고 그냥 잊고 그냥 떠올리고. 그러나 그 '그냥'이 너무나 어렵고 멀기만 한 것이라. 행복해져야 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게. 행복해져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드라마에서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 해피엔드는 아닐 것 같다. 외상성 간손상. 그리고 간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진통제. 그리고 서주원(이기우 분)과 정유진(강한나 분)의 이별을 앞둔 포옹. 정유택(태인호 분)이 이강두에게 한 말이 신경쓰인다. 서주원의 아버지는 단지 하문수 아버지로부터 받은 비난이 상처가 되어 자살한 것일까?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남겨진 부모들이 있다. 세상은 그렇게 나무뿌리처럼 단단히 뒤엉켜 있다. 갑자기 무거워진다. 불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