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더 - 엄마는 엄마를 낳고 딸은 딸을 기르고

까칠부 2018. 2. 1. 11:56

가끔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겨지고 있는 출산률 저하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닐까?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 아닌 단지 부모가 되기 싫어서는 아닐까.


그러고보면 고도성장기 우리 부모세대도 부모가 되기 위한 충분한 준비와 교육 없이 갑작스럽게 부모가 되어야 했던 경우였다.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무엇이 진정 아이를 위하고 사랑하는 방법인지. 부모입장에서는 단지 시행착오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자식 입장에서 그것은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부모가 지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아무리 부모가 밉고 싫어도 자식은 부모를 닮을 수밖에 없다. 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엄마로부터 버려졌기에 엄마가 되기 싫었고, 사랑으로 길러준 엄마가 있었기에 엄마가 될 수 있었던 수진(이보영 분)처럼. 지독하게 닮았다. 낳아서 엄마가 된 것이 아니라 버려진 아이를 주워 엄마가 되었다. 수많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던 끝에 아무것도 남은 것 없이 끌려가듯 요양소로 들어가는 보육원 원장의 모습이 무언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엄마가 되어 주어서 고맙다. 그것만은 잊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다행히 수진의 엄마 영신(이혜영 분)도 수진 뒤로는 제대로 엄마노릇하며 키운 듯하다. 진심으로 엄마를 걱정하며 화낸다. 잠시 나쁜 상상을 했었다. 수진의 동생 이진(전혜진 분)이 엄마의 병을 알게 되었을 때 유명한 배우이기도 한 엄마의 재산부터 욕심내는 것이 아닌가. 너무 흔하지 않은가. 자식이 부모 걱정에 화까지 내고 부모는 그런 자식의 걱정을 무심하게 받아 넘긴다.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으면. 수진에게도 그럴 수 있었더라면. 하지만 어느새 수진은 자라 어른이 되어 있었고 그때의 상처는 훌쩍 커버린 몸처럼 함께 수진의 일부로 자라 있던 터였다. 어떻게 수진의 엄마 영신과 수진은 다시 화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혜나(허율)의 엄마 자영(고성희 분)은 또다른 젊은 시절의 영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리고 철이 없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연출하고 있는 듯하다. 남자친구인 설악(손석구 분)에게 아이처럼 의지하며 인터넷에 달리는 댓글에 속없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 부모가 될 결심을 하기도 전에 부모가 되었다. 엄마가 될 준비를 채 갖추기도 전에 엄마가 되고 말았다. 실감이 없는지도 모른다. 설악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궁금해서 야구방망이로 윗집 할머니를 때려서 소년원에 보내졌었다.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인 이유이기도 하다. 낳았다고 다 부모가 아니며 낳았다고 다 자식은 아닌 것이다. 하필 수진이 어렸을 적 길러준 보육원 원장과 만나야 했던 이유다.


사실 내내 불편했었다. 어째서 수진은 혜나를 데리고 그리 어렵게 도망쳤어야 하는 것일까. 일부러 길 아닌 길을 골라다니며 빛 없는 어둠을 헤매며 고생스럽게 도망다녔어야 하는 것일까. 역시 다른 생각을 해본다. 남자가 싫어 차라리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으려는 여성들이 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는 싫지만 누군가의 엄마는 되고 싶다. 그러니까 수진을 엄마로 만들어준 진짜 엄마에 대한 것이다. 자기가 낳은 자식의 엄마는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엄마로 불리고 엄마로서 그 누군가를 보살피고 싶다. 도망친 것은 어쩌면 수진의 숨겨진 이기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혜나를 위해서가 아닌 엄마가 될 수 없었던 자신으로부터의 도피였다. 수진이 혜나를 구한 것이 아니라 혜나로 인해 수진이 구원받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엄마들이다. 딸들이다. 여성들이다. 그리고 기묘하게 그 관계를 왜곡시키는 남성들이 등장한다. 여성은 남성에 기대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여전히 강하게 그렇게 믿는 많은 여성들이 있다. 하지만 여성 자신도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물학적인 엄마가 되어야 한다. 그런 미숙함이 서로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수진의 엄마 영신의 암은 그런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다. 살아있다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니까.


여전히 답답하게 사람들을 피해 도망다녀야 한다. 엄마가 되기 위해 마침내 외면하던 엄마를 만나려 한다. 딸이 아닌 엄마가 되어 자신을 버린 엄마를 만날 결심을 한다. 또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무렵 형사 창근(조한철 분)은 혜나의 뒤에 숨어 있던 수진의 존재를 눈치챈다. 쓸데없이 이런 데서 눈치가 빠르다. 


이제 겨우 시작이기는 하다. 겨우 시작인데 벌써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좁은 대한민국에서 숨고 도망다닐 곳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마음먹고 숨으려면 숨을 곳은 또 의외로 많다. 어떤 이야기일까. 답답해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