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티 - 나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까칠부 2018. 2. 10. 11:07

매슬로우는 인간이 가지는 욕망을 5단계로 나눈 바 있었다. 이 가운데 인정과 애정, 소속의 욕구는 세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첫번째 생리적 욕구가 해소되고 두번째 안전과 안정의 욕구가 해소되면 비로소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받아들여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이같은 이전 단계의 욕구가 해소된 다음에야 비로소 사람은 다음 단계의 욕구를 가지게 된다. 다시 말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받아들여지는 것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이전의 기본적 욕구들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2002년 당시 히딩크는 염원하던 16강 진출에 성공하고 인터뷰에서 "나는 아직 배가 몹시 고프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었다. 같지는 않을 테지만 역시나 고혜란(김남주 분)에게도 아직도 그같은 생리적 욕구와도 같은 지독한 허기짐이 영혼의 레벨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과거 겪어야 했던 불안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었는지도 모른다. 보다 높은 곳에서 누구도 자신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아니 아예 그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빈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혜란이 마치 위협하듯 한지원(진기주 분)에게 털어놓은 자신이 '뉴스나인'의 앵커에 집착하는 이유라던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말은. 원래 강태욱(지진희 분)과 처음 만났을 때 신참기자이던 시절에도 그녀는 그랬었으니까.


그래서 남편 강태욱을 사랑하면서도 항상 그 다음이었던 것이다. 처음 강태욱과 만났을 때도 운명처럼 그에게 끌렸었으면서도 애써 감추고 그와 거리를 두려 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가졌으면서도 '뉴스나인'의 앵커가 되기 위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아이를 지웠다. 그로 인해 멀어져버린 남편 강태욱을 아무 감정도 없는 듯 무심히 견뎌내고 있었다. 현실의 목적과 이유를 위해 애정없는 결혼생활을 억지로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남편 강태욱 앞에서 최소한 고혜란은 항상 자신이 쓰고 있던 모든 가식과 가면을 벗은 채 진심으로 그를 대하고 있었다. 차라리 미움받더라도 강태욱을 속여서 동정받기보다 미움받더라도 그의 솔직한 도움을 받기를 바랐었다. 어쩌면 진심으로 남편이 자신을 지지하고 도와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그런 절박함이니까. 그런 정도의 간절함이고 절실함이었을 테니까. 며칠을 굶은 허기와도 같이 그저 끊임없이 갈구하고 갈망하는 본능과도 같은 발버둥이었을 테니까. '뉴스나인'의 앵커가 되지 못하면 죽고 말겠다. 아니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와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었으니 그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지불하는 대가가 곧 대상이 가진 가치다. 그것을 가지기 위해 자신을 얼마를 지불할 수 있는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들.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존경받지 못해도, 모두로부터 비난을 들어도, 사방에 적을 만들면서도, 그러나 반드시 그 자리는 내가 가져야겠다. 물론 나는 고혜란의 과거까지 모두 알지는 못한다. 그녀에게는 또 어떤 무슨 과거가 감춰져 있는지.


성공한 두 남녀를 대비한다. 바닥에서 일어나 남다른 성공을 이룬 이재영(고준 분)과 고혜란 두 사람을 대비시킨다.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탐욕스럽게 주위를 파괴시키는 자와 그로부터 절박하게 자신이 지키려 하는 이를. 어쩌면 증오와 꿈이라는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복수심과 열망이라는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성공의 보상을 바랐고 성공 그 자체를 바랐다. 서로가 치른 대가가 달랐다. 서로가 가진 각오가 달랐다. 그래서 고혜라는 진키는데 모든 것을 걸고 이재영은 빼앗는 것에 자신의 성공을 이용한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유독 그런 것들이 보이는 것 같다. 아마도 고혜란이 가진 절박함에 동화된 모양이다.


그럼에도 고혜란을 사랑한다. 그녀를 위해서. 심지어 자신마저 이용하려는 그녀의 야심과 욕망마저 인정하면서. 여전히 고혜란을 의심하지만 그만큼 고혜란을 사랑하고 있기도 하다. 강태욱은 모든 것을 가지고 이룬 사람이다. 굶주릴 일도 목마를 일도 거의 없었다. 불안과 두려움에 떨어야 할 일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사랑 하나면 된다. 자기가 만족할 수 있으면 된다. 그래서 어른들도 자란 환경이 중요하다 말하는 모양이다. 혜택받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대개 일반적으로 넉넉하고 성품도 좋다. 어쩔 수 없다. 마음에 여유가 다르다.


다시 한 달 뒤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시간이 돌아온다. 고혜란의 브로치가 어떻게 이재영의 차에 있었는지. 당시 고혜란과 이재영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고혜란과 남편 강태욱 사이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남편 강태욱이 고혜란이 취조받는 자리에 변호사의 신분으로 당당히 들어온다. 고혜란은 남편 강태욱을 그동안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당연히 그밖에 많은 수상쩍은 인물들이 알게 모르게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고혜란도 처음부터 강태욱에게 이끌리고 있었다.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