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 다 타버린 재와 같은, 미지근하고 무덤덤한 웃음처럼

까칠부 2018. 2. 28. 10:12

타는 것은 언젠가 꺼지게 된다. 뜨거운 것도 언젠가 차게 식는다. 차라리 찬 것이 낫다. 뜨거운 것도 식은 것도 아닌 미지근한 채로 그냥 시간만 보낸다. 


언젠가 태양도 식을 것이다. 태양도 식고 지구도 식으면 지구의 수많은 생명은 어떻게 될까? 온기를 잃은 생명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그런 이야기다. 계기는 이혼이다. 그것도 배우자가 바람나서 이혼하고 혼자 남겨진 때문이다. 사랑했던 만큼 배신감도 크고, 믿었던 만큼 상실감도 클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혹시나 내 탓은 아닐까?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닐까? 내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늘에 대한 의욕도 내일에 대한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흘러가듯 떠나보낸다. 오늘만 산다지만 정작 오늘에 그들은 없다. 어제에도 내일에도 그들은 없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허무하고 그래서 매일매일이 고통스럽다. 더 지독한 것은 어느새 그 고통에 익숙해져서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파해야 하는데, 분명 아픈데, 아픔을 생생히 느낄 기력조차 없다. 차라리 아파할 수라도 있었으면.


말라간다. 말라죽어간다. 그런 이들이 만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는 그런 우울함을 웃음으로 승화할 줄 안다. 항상 내가 주장해 오던 것이다. 웃음에는 낙천과 긍정이 있어야 한다. 낙천과 긍정이란 비관과 부정을 딛고 일어서는 역설의 힘과 같은 것이다. 어처구니 없이 웃고 어이없이 피식거리고 그래도 웃을 수 있구나 위안을 얻는다. 안순진(김선아 분)이 진짜 손무한(감우성 분)의 돈을 바라고 그를 유혹하겠다 그리 허튼 수작을 벌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너무 지겹고 무료하니까. 그거라도 할 수 있으면 그래도 무언가 하고 있다는 실감은 가질 수 있을 테니까.


그냥 노는 것이다. 울 수 없으니까.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허튼 짓을 하며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이고 그러면서 잠시나마 우울한 현실을 잊을 수 있다. 그런데 손무한에게서 느껴지는 상처가 자꾸 안순진을 진지하게 진심으로 만들고 만다. 외롭다. 괴롭다. 힘들다. 누군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아무에게라도 하소연하며 기댔으면 좋겠다.


어른인 때문이다. 그냥 아무나 붙잡고 펑펑 울며 온갖 원망과 미련을 쏟아냈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쿨한 척. 멋진 척. 강한 척.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래서 상처는 더욱 안에서 덧나고 만다. 손무한과 안순진 주위에 각각 친구 한 사람 씩이 전부인 것도 그래서다.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있었으면. 이치에 맞지 않아도 그저 무작정 편들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었더라면. 그래서 외롭지 않아도 되었더라면. 약해질 수 없기에 오랜만에 만난 딸 앞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어차피 돌려보내야 하고 함께 있을 수 없는 사이다.


민망할 정도의 유머가 우습기보다는 차라리 서럽다. 울 수 없으니 차라리 웃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발버둥이 시리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웃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곧 산다는 것일 테니까. 그럼에도 살려 하고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단지 아직 길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혼자라는 것은 이렇게 외로운 것이다. 아무도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견뎌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괴롭고 힘든 일이다.


감우성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 그러니까 어울리는 배역이다. 삶에 치이고 찌든 고단함이 주름이 내려앉은 얼굴에 그대로 묻어난다. 무심한 듯 냉정한 듯 그러나 안순진과의 짧은 기억이 그를 지금껏 살게 했다. 김선아야 여전히 변함없지만 그럼에도 세월은 그녀를 비껴가지 않는다. 하루가 저물면 그만큼 드리워진 그림자도 짙고 길어지는 법이다. 먼 먼 세월을 돌아 무심코 짓는 웃음을 떠올린다.


우울한 이야기는 질색이다. 숨막힐 정도로 답답한 이야기도 영 아니다. 약해진 때문이다. 피곤하고 지친 때문이다. 그래서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좋다. 삶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담긴 웃음이다. 부디 진짜이기를. 좋다.